[책보기 세상읽기]번역가 키워야 우리문학이 큰다

  • 입력 2002년 12월 27일 17시 48분


박의상
이상한 취미라고 놀릴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북 가이드’ 읽기를 좋아한다. 프랑스의 알뱅미셸출판사가 펴낸 ‘이상(理想)의 도서관’(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판된 모든 책들을 49개 분야로 나누고 다시 분야별 대표로 49권씩을 선정하여 그 2401권의 중요성을 하나하나 코멘트한 책으로 일본어 번역판은 713쪽이나 된다)을 읽다 보면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선정하고 보니 4분의 3이 번역된 책이라는 것.

프랑스처럼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센 나라가 실토하는 이 결과는 무엇을 말하는가. 나의 4분의 3은 남이라는 것 아닌가. 그만큼 세계는 뒤섞이고 있다는 것, 세상을 알려면 다른 나라 책들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아시아문학’ 49권 목록을 보면 중국소설로 ‘홍루몽’ ‘서유기’ ‘수호전’ ‘아Q정전’이 들어가고 일본 책으로는 ‘겐지 모노가타리’ ‘바쇼 하이쿠집’에 현대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까지 들어갔는데 한국 책으로는 겨우 고전소설 ‘박씨부인전(朴氏婦人傳)’ 하나가 들어가 있다. 놀랄 것은 없으리라. 이 ‘이상의 도서관’이 나온 것이 1988년인데 우리 것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우리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다른 관점에선 우리 문화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겨우 최근 10년 사이의 일이니 말이다.

또 하나, 이 책을 읽다가 알게 되는 것은 우리말 번역이 안 된 좋은 책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절실히 느끼는 것은 번역이 참 중요하다는 점이다. 번역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은 출판사가 번역가를 잘 고르고 대접해야 한다는 것도 포함한다.

물론 최근 여러 좋은 사례가 생기고 있다. 세계문학에서 가장 난해한 소설로 평가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전 4권) 재번역에만 20년을 바친 김종건 교수와 ‘카뮈 전집’ 22권을 내겠다고 나선 지 10년 만에 열네 권을 번역해 낸 김화영 교수의 예가 선두에 설 것이다.

안종설씨의 번역으로 미국 단편소설계의 귀재라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을 3권이나 연속해서 낸 ‘집사재’. 홍성영씨의 번역으로 850쪽짜리 애드가 앨런 포의 단편소설전집 ‘우울과 몽상’을 낸 ‘하늘연못’. 그리고 김재인씨 번역으로 1000쪽이나 되는 들뢰르·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낸 ‘새물결’ 등의 출판사도 있다.

미국이 자랑하는 ‘오즈의 마법사’ 14권은 어떤가. 문학세계사 김종해 주간은 ‘믿을 수 있어서’라면서 이 방대한 작업을 한 사람의 번역자 최인자씨에게 맡겼다. 그리고 3년을 걸려서 냈다.

이제 김석희씨 한 사람의 번역으로 ‘쥘 베른 전집’ 20권이 열림원출판사에 의해 출판되기 시작했다. ‘해저 2만리’니 ‘15소년 표류기’니 해서 겨우 몇 가지만 축약본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던 쥘 베른의 전 작품들을 제대로 번역해 낸다는 기획이다. 1년 걸려 이제 3권이 나왔으니 번역에 나선 김석희씨가 3∼4년은 더 여기에 매달릴 결심인 모양이다. 존 파울즈의 까다로운 명작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10권짜리 ‘로마인 이야기’에서 겪었을 번역의 피 말리는 어려움을 마다 않고 말이다.

번역은 정말 까다로운 작업이다. 외국어를 좀 알기에 하는 말이다. ‘제2의 창작’이라는 표현이 당연하다. 그러니 번역가들도 당당히 자기 이름을 내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원작료나 번역료로 똑같이 6%를 주는 것이 이해된다. 더구나 이젠 저작권계약 시대이므로 한 번 번역으로 그 책을 독점하게 된다. 번역가도 출판사도 필생의 작업으로 아시고 믿을 만한 번역을 해 주시기 바란다.

이런 소중한 작업을 우리가 어떻게 대접하면 좋을까. 사주는 것이다. 읽다가 던져놓게 되더라도 사주는 것이다. 애국의 문화가 따로 있는가. 우리책이든 번역책이든 좋은 책을 자꾸 사주는 것이 읽어주는 것보다 먼저의 일이다. 박의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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