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도서]파리에서/지금, 행복하십니까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7시 43분


임준서
한해가 저물고 있다. 성탄이 가까워지자 예쁜 장식들이 거리마다 경쟁적으로 등장해 파리 시민들의 눈을 마냥 즐겁게 한다. 큰 도로변뿐만 아니라 작은 골목 안에도 기발한 모양의 등불 장식이 내 걸리고 가게 진열장 안은 화려한 성탄 장식들로 가득하다. 간간이 건물 벽 위에 매달려 있는 새빨간 옷의 산타할아버지 인형도 꽤나 앙증스럽게 보인다.

노엘(프랑스어로 크리스마스라는 뜻)이 예수님의 생일잔치라는 사실은 점점 잊혀지고 상업적인 축제의 껍데기로만 남게 됐다고 세태를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파리의 12월은 여느 때보다 2000년 전 인자(人子)께서 남겨주신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파리 7구 봉마르셰 백화점 앞에선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했고 프랑스 2TV에서 주관하는 장애인 돕기 생중계 행사인 ‘텔레통’ 프로그램에서는 ‘8500만유로나 모금해 기록을 세웠다’고 떠들썩하다.

17년 전 집 없는 걸인들을 돕기 위해 ‘콜뤼쉬’란 한 코미디언이 시작한 ‘사랑의 레스토랑’ 행사에도 변함 없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말없이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사랑의 나눔에 인색한 채 개인적 성공만을 생각하고 정신 없이 앞으로만 치달아왔던 사람들이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문득 ‘도대체 성공한 삶이 뭐기에…’라고 자조와 푸념 어린 질문을 내뱉으며 한번쯤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고 싶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철학자 뤽 페리의 최신작 ‘성공한 삶은 무엇인가?’는 인간과 삶에 대한 저자의 깊은 성찰이 담겨있는 ‘지혜의 책’이다. 현대사회에서 ‘성공의 의미’는 주로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효용성이란 두 잣대로 측정되지만 저자의 말대로 ‘삶의 성공’이 근원적으로는 ‘소유의 문제’보다는 ‘존재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면 결국 ‘성공적 삶’에 대한 질문은 ‘행복한 삶’의 의미를 규명하는 문제로 귀착되는 것 같다.

균형 잡힌 시각과 능숙한 필체로, 뤽 페리는 인류 역사 속에 비친 ‘행복한 삶’의 다양한 모습을 고루 탐색하고 있다. 서구사회가 발전시켜온 ‘도구적 이성’만으로는 ‘행복의 조건’을 규명해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저자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뛰어넘어 기독교의 ‘초월성’과 ‘구원’의 전통적 개념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만 올바른 인간 탐구의 조건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행복의 외양은 다양하게 바뀔 수 있지만 ‘사랑’ 및 ‘실천적 행동’과 같은 불변적 가치들은 항존하며 결국 ‘행복한 삶이란 우리 내부에서 치열하게 선택된 개인적 산물’임도 잊지 않고 있다.

‘영적(靈的) 휴머니스트’임을 자처하며 신인문주의적 세계관을 제안하는 실존적 휴머니스트, 이 세상에 ‘환상 없는 마법’을 걸기를 소망하는 마법사(?), ‘늘 투명한 의식 속에 깨어 있기를 원하는 철학자’, 뤽 페리의 책은 세밑에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이미 여러 베스트셀러 철학에세이를 출판한 그는 현재 라파랭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맡고 있다.

임준서 프랑스 LADL 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원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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