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피터 벡/"붙임성 있다고 뽑으실 겁니까"

  • 입력 2002년 12월 4일 18시 18분


이제 2주일 뒤면 한국의 유권자들은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르게 된다. 지금까지의 선거전은 예측불가능한 것으로 정평이 난 한국 정치에 걸맞게 진행돼 왔다. 선거일까지 아직도 많은 반전이 있으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선거전의 ‘바람’과 밀실거래, 스캔들, 중상모략 및 모호한 공약 등은 앞으로 5년간 격랑을 헤치고 한국을 이끌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의 중요한 의미를 놓치기 쉽게 만든다.

▼산적한 현안 해결능력이 우선▼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의 후보 단일화로 인해 이번 대선은 1971년 박정희(朴正熙) 후보와 김대중(金大中) 후보간 대결이후 처음으로 여야 양강 구도로 이루어지게 됐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어느 후보도 특정 지역을 대변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노 후보는 후보 단일화를 이루기 위해 총리에게 좀 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개헌 추진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권자들은 이 같은 밀실 거래가 진정으로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시정하기 위한 것인지, 혹은 그저 권력 나눠갖기에 불과한 것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2원화된 통치는 혼란과 정통성 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는 데는 효율적이다. 게다가 후보 단일화는 정작 중요한 이슈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선 때마다 어김없이 폭로전이 펼쳐진다. 도청과 불법적인 정치자금제공 주장은 지금 한국 언론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 같은 주장들은 심각한 것이지만 선거일까지 진상이 가려질 것이라고 믿는 이는 대단히 순진한 유권자들뿐일 것이다.

끝없는 스캔들과 중상모략은 불행히도 유권자들로 하여금 정치 전반에 환멸을 느끼게 한다. 나는 한국인들이 “한국 정치는 개판”이라고 탄식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나는 ‘개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믿는 많은 미국인들 가운데 한 명이지만 한국의 지도자들은 보다 높은 수준의 정치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후보들은 아직 누구를 찍을지 정하지 않은 부동층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모호한 선거공약으로 모두를 즐겁게 하고, 아무도 화나지 않게 하며, 어려운 질문을 회피해야만 한다.

이에 따라 선거는 실질적으로 가장 붙임성 있는 후보를 뽑는 경연대회가 되고 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당선된 것은 그의 정책이 더 인기가 있거나 그가 민주당 앨 고어 후보에 비해 더 총명하고, 경험 많고, 연설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호감이 가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직면할 이슈들을 보면 이번 대선을 인기 콘테스트로 치르기에는 너무 심각하다. 후보자들이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하더라도 유권자들은 투표에 앞서 스스로에게 일련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 경제는 5년 전에 비해선 많이 나아졌지만 개혁을 완수하기엔 아직 멀었다. 개인의 부채는 사상 최고 수준이고, 세계경제는 여전히 하향 국면에 있다. 어느 후보가 개혁과 회생에 가장 헌신할 것인가. 어느 후보가 과거와 결별하고 ‘부패 왕국’을 종식시키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가.

▼기권하고 후회하지 않기를▼

평균적인 유권자들은 경제에 가장 관심을 기울이지만 북한은 한국의 차기 대통령에게 엄중한 도전을 제기한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모두 남북한의 새로운 관계 형성에 관한 큰 희망을 갖고 취임했으나 씁쓸한 실망에 직면했다. 어느 후보의 대북 접근이 이런 전임자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에 가장 적합한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의 위협을 제거한 뒤 전쟁 매파들이 북한으로 관심을 돌릴 때 누가 한반도의 긴장이 통제권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가장 적합할 것인가.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또 미국과의 관계경색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해야만 한다. 한국의 반미감정은 어지러울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투표일에 이 같은 도전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치열한 선거가 끝난 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되면 투표장에 가지 않은 유권자들은 큰 후회를 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지난 대선 때도 그랬다. 한국의 유권자들이 대선 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 훌륭한 지도자를 뽑기를 기대한다.

피터 벡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 국장 beckdong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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