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회화나무는 수령(樹齡)이 보통 몇백년씩으로 이중 상당수가 천연기념물이다. 그만큼 유서가 깊고 간직한 사연도 가지가지다.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에 있는 600년 된 회화나무는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때 끌려온 사람들이 목매달려 순교한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교수목(絞首木)이라고 불린다. 얼마 전 경북 포항의 영일민속박물관은 앞뜰에 있는 60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죽어가자 주변에 웅덩이를 파고 막걸리 400여ℓ를 쏟아 부었다. 고목을 살리는 영양성장제로서 막걸리만큼 효험이 좋은 것도 없다고 한다. 잘 자란 회화나무의 가지 껍질 진 꽃 열매 등은 약용으로도 좋아 한약상들에게 인기다.
▷경북 안동 도산서원 안에 있는 수령 400년의 회화나무가 큰 줄기만 남긴 채 대부분 잘려 나갔다. 지난해 봄부터 가지에 잎이 돋아나지 않는 등 시름시름 앓아오다 올 여름 마침내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 1000원권 지폐에도 나오는 주인공이어서 아쉬움이 더 크다. 지폐 뒷면에 나오는 도산서원 그림 중 왼쪽 뒤편의 무성한 숲부분이 바로 회화나무다. 600년이 넘은 회화나무들도 건재한 마당에 400년짜리가 그처럼 죽어버리다니 혹시라도 관리에 소홀함은 없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도산서원측은 죽은 회화나무 줄기를 그대로 둔 채 능소화 덩굴을 심어 감싸게 하는 등 주변을 단장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또 회양목 금송 등 서원내 다른 고목들에 대한 긴급 치료작전에 들어갔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잃고 뒤늦게 허둥대는 느낌이다.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에 없을 때처럼 허전한 것도 없다. 이제 회화나무는 그곳에 없다. 유서깊은 ‘학자나무’ 한 그루의 종말이 흡사 이 나라의 어두운 교육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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