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인해/북한의 살길은 核포기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9시 50분


북한 핵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된 1993년 봄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 대해 학생들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학생들의 90% 이상이 북한의 핵 보유에 찬성했다. 이유인즉, 통일이 되면 북한의 핵이 우리 민족의 핵이 되어 통일된 한반도가 핵 보유국이 될 텐데 굳이 이를 반대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북한의 핵 보유는 일본의 핵 보유를 유발하고 역내 군비경쟁을 일으켜 평화와 안정을 해치게 될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북한 위험한 발상 거둬야

북한은 핵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방식과는 별개로 농축우라늄 핵프로그램(HEU)을 계획하고 있다고 시인함에 따라 이를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북한은 HEU와 관련해 두 가지 해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대외원조를 포기하면서 핵무기 보유를 공식화해 핵 국가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HEU를 포기하고 미국의 인정을 받아 대외원조를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북한에는 첫 번째 선택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마저도 체제보장을 해줄 수 없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김정일체제 유지를 위한 유일한 억지력(deterrence power)인 핵 보유를 통한 자위만이 가장 안전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두 번째 선택은 전략적 시각에서 보면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을 것이다. 체제생존의 마지막 카드로 간주해 개발하고 있는 HEU를 적절한 보상도 없이 무조건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울 것이다. 그러나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강경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군사대치를 하겠다는 자살행위를 각오하지 않는다면 두 번째 선택 외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미국과 제네바 합의를 이룰 수 있었던 ‘벼랑끝 외교’를 다시 시도해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핵 문제가 결코 협상대상이 될 수 없다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정책은 수사적 의미가 아니라 제재조치로 나타날 실제적 상황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이미 선적한 11월분의 중유만 북한에 보내고 12월 이후는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의 연간 가용전력 생산능력은 200만㎾(남한은 4200만㎾)로 석탄과 중유로 화력발전소를 가동하면서 소모되는 총 중유량이 약 100만t 정도다. 이를 감안하면 지난 8년 동안 미국이 1년에 50만t을 공급한 분량은 매년 총 소비량의 거의 50%에 이른다. 이것이 중단된다면 극심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경제활동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를 위반한 북한이 명시적으로 조건없이 HEU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일본은 북-일수교를 원하고 있으며, 한국은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시점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섣부른 군사행동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은 일단 시간을 끌면 협상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북한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 내부 경제상황은 이미 7·1 경제관리개선조치에 따른 가격개혁으로 물가상승과 물자부족의 악순환을 불러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농산물과 일상용품 등 원자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을 감안하면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활성화가 시급하다. 이를 위한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본 유입은 미국의 승인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남북한경협도 남한 내부의 여론 악화로 적극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 일본이 식민지 보상을 하지 않으면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겠다는 발상은 그만큼 북한에 외부자금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시간 흐를수록 경제는 악화

북한은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대외관계 경색으로 외부지원이 차단돼 경제체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체제까지 총체적으로 붕괴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북한체제 보장의 담보를 위해 개발하고 있는 핵프로그램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체제붕괴를 가속화할 수 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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