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훈/위기의 검찰과 ´한국판 미란다´

  • 입력 2002년 11월 13일 17시 59분


지금부터 36년 전인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세계 인권사에 한 획을 그은 판결을 내린다. 이른바 ‘미란다 판결’이다. 인권승리의 표상이자 사법정의의 대명사로까지 통하는 이 판결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악취를 짙게 풍기는 흉악 범죄자다. 어네스토 미란다는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의 주도(州都)인 피닉스 시내 한 영화관 부근에서 18세 여성을 납치했다. 그는 그녀를 자동차 뒷좌석에 밀어 넣고 손발을 밧줄로 묶은 뒤 예리한 흉기를 목에 대고 위협했다. 그는 공포에 떨면서 ‘도와 달라’고 외치는 여성을 인적이 드문 사막으로 끌고 가 강제로 욕보였다.

그는 몇 개월 전에도 어린 여학생을 겁탈하려다 완강한 저항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8달러를 빼앗은 혐의만으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는 15세 때부터 강도 절도 강간 등 흉악범죄를 무수히 저질러 온 범죄꾼이었다.

애리조나 대법원은 미국 언론이 ‘인간쓰레기’라고 부른 이런 미란다에게 단기 20년, 장기 30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로부터 꼬박 1년 뒤 미란다는 미국 전 신문의 1면 머리기사에 등장한다. 1960년대 진보적 사법혁명을 주도했던 얼 워런 연방대법원이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제소한 미란다의 손을 들어줬던 것. 워런 대법원장은 직접 집필한 판결문에서 경찰이 불법적으로 얻어낸 자백과 관련 증거들을 무효로 선언했다.

이 기념비적 판결을 비난하는 여론이 미국사회에 들끓기 시작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까지도 1968년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앞으로 미국은 범죄자가 버젓이 대로를 활보하는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그후 수사기관이 형사피의자에게 범죄혐의를 캐묻기에 앞서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진술한 것이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반드시 알려줘야 하는 ‘미란다 고지(告知)’ 원칙은 미국 수사기관에서는 지금까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지켜지고 있다.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다 폭행을 당해 숨진 조천훈씨나 물고문을 당했다는 박모씨의 경우는 어떨 것인가. 이들도 ‘한국판 미란다들’로 남아 우리 사회의 인권시계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 것인가. 조직폭력배인 이들은 파주 스포츠파 소속으로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98년 스포츠파 전 두목 박모씨와 99년 이모씨를 각각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 피의자 폭행 사망사건으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서울지검 강력부장이 ‘줄사표’를 내고 주임검사는 사표를 낸 뒤 구속까지 됐다. 폭행 사망사건은 물고문 파문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현정권 들어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해 온 검찰에 ‘정치 검찰’ 악명(惡名)에 이어 ‘고문 검찰’ 오명(汚名)까지 덧칠된 셈이다.

위기에 처한 검찰은 몇 가지 설익은 대책을 벌써부터 내놓고 있다. 그러나 탁상행정식 대책 마련만이 능사는 아니다. 위로는 검찰총장에서 아래로는 일선 수사관까지 검찰 구성원들의 생각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땅이 움직인다고 주창한 코페르니쿠스처럼 ‘발상의 전환’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환의 출발점은 한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실체적 진실발견’에만 골몰하기보다는 오히려 ‘적법절차와 인권보장’에 더 무게를 두는 쪽이어야 한다. 일이 터질 때마다 ‘뼈를 깎는 각오로…’를 되뇌어 온 검찰에는 더 이상 ‘깎을 뼈’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검찰의 이웃사촌인 법원도 이번 피의자 사망사건을 강 건너 불 보듯 하지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검찰의 강압 수사를 법정에서 제대로 가려내려는 노력을 다 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대법원은 언제쯤 우리 사회의 인권사를 새로 쓰게 만들 판결을 내놓을 것인가.

최영훈 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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