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북핵해결, 北에 맡길건가

  • 입력 2002년 11월 13일 17시 59분


한반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에 못지 않은 엄청난 재앙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 또는 ‘핵 카드’ 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핵 카드’ 보유국이란 핵무기 제조에 성공해 이를 외교적 흥정에 이용하는 단계에 이른 것을 말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달 초 제임스 켈리 미 특사의 방북 때 북한 당국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해 전 세계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점이다.

▼안보 양보한 ´본말전도´ 햇볕▼

만약 켈리 특사가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알아내지 못했더라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북한은 우리가 평화무드에 취해 있는 동안 남한이 제공한 달러로 핵무기 제조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세계에서 아홉번째의 핵무기 보유국이 된다. 그럴 경우 남한은 물론 주한 미군과 일본이 북한의 핵에 노출되고, 나아가서 동북아 안보상황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켜 일본의 핵무장을 합리화할 구실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1994년의 제네바 협정 위반으로서, 핵무기 제조를 하지 않는 조건 아래 경수로 건설과 중유 지원을 해주고 있는 한국 미국 일본 등 관련국들을 속인 것이다. 이 때문에 그만큼 역풍도 강해지고 있다.

북한의 농축우라늄 핵폭탄 개발은 파키스탄과의 합작사업이라고 한다. 이런 합작방식은 현재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항거하는 새로운 핵무기 개발방법이라 해서 온 세계가 떠들썩하다. 따라서 93년 국제적 압력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도 핵 보유를 포기하도록 국제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지금 북한의 핵무기 개발 성공여부를 둘러싸고 과장하려는 경향도 있고,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주목할 사실은 북한 당국이 요즘 핵무기 개발과 보유 여부에 관해 시인도 부인도 않는 이른바 ‘NCND 정책’을 공식방침으로 정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난 주 평양을 다녀온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가 전한 내용이다. 핵보유 국가들이 즐겨 쓰는 이런 외교적 용어를 북한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안보문제는 1%의 위험만 있어도 100%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초기대응은 너무도 안이했다. 김대중 정권은 당초부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중대시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재작년의 6·15공동선언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대량살상무기의 생산중지를 요구했다고 나중에 밝혔지만 공동선언에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남북대화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한반도의 안보문제를 뒤로 미룬 결과 그의 햇볕정책은 본말이 전도되고, 선후가 뒤바뀌고, 경중(輕重)이 무시되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한 후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장관급회의의 공동발표문은 더욱 기이했다. 공동발표문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문제에 관해 막연하게 “핵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적극 협력하기로 한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공동발표문의 전문에서는 “쌍방은 최근의 남북관계가 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부합되게 좋게 발전하고 있는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자화자찬했다. 북한이 북-미간의 제네바 협정뿐 아니라 남북간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위반했는 데도 불구하고 최근의 남북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모든 문제를 대화로 해결’ 운운한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정부, 적극 대처 나서라▼

현재 미국은 북한의 핵 카드 이용술책을 단호히 거부하고 핵무기 개발 중단부터 약속하라고 강경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설사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완화되어 북-미간 대화가 성사되더라도 협상전망이 반드시 밝은 것만은 아니다. 북한과의 협상은 지겹도록 힘든 줄다리기가 될 수 있다. 과거의 행태로 미루어 보면 그들은 엉뚱한 조건을 내걸어 시일을 질질 끌면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핵무기 개발을 계속할지 모른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거나 핵 카드를 이용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핵무기 개발 저지는 노력을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해도 되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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