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원순/씁쓸한 ´검찰의 휴업´

  • 입력 2002년 10월 28일 18시 33분


바야흐로 선거시즌이다. 선거시즌이라는 많은 징표가 있다. 평소 권력자가 얼굴을 내밀지 않는 곳곳에 대선 후보들과 그 부인들이 얼굴을 내미는가 하면, 관가에 줄서기가 시작되고 정보유출과 기강단속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징표들이다. 검찰수사 역시 그 징표 중의 하나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검찰의 모습이 바로 대선이 본격화되었다는 증거다. 죽기 살기로 고소 고발을 일삼고 검찰수사에 매달리는 정치권 때문에 검찰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왜 정치사건 수사중단인가▼

이러한 가운데 검찰은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 정치사건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중단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현재 정치인들이 서로 고소 고발한 ‘산업은행 4900억원 대출압력 의혹’ 사건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20만달러 수수 의혹’ 사건 등 여러 정치사건들이 검찰에 계류 중이다. 정치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중단은 검찰의 ‘개점휴업’이나 다름없다. 공장으로 비유하자면 공장의 조업을 일시 중단하는 것이다. 수사요청이 있으면 신속하게 수사를 벌이는 것이 검찰의 직무이다. 그것은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런데 수사를 기피하거나 무작정 연기한다면 이것은 또한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

더구나 선거가 끝나면 그 사건들이 공정하게 처리될 가능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선거결과 집권한 세력에 유리하게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는 검찰이 이미 권력을 차지한 정당이나 정치인을 상대로 제대로 수사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검찰은 ‘권력의 풍향계’라는 말이 있다. 검찰이 권력의 향방에 따라 그 수사의 방향과 결과를 달리해 왔다는 것이다. 일반인으로서는 사건의 진실을 알 도리가 없으나, 지난 대선에서 당시 검찰은 DJ의 비자금사건에서 DJ의 손을 들어 주었고, 이번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 국민의 정부 아래에서는 권력형 비리 사건마다 야당의 비판과 국민의 불만을 샀다. ‘뼈를 깎는 아픔’과 함께 자기개혁을 다짐한 것이 몇 차례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물론 검찰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가령 검찰이 당초 병역비리 사건을 수사할 때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거 검찰을 방문해 거칠게 항의했다. 수사가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을 때는 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을 방문해 수사방향에 대해 항의를 벌였다. 어떻게 수사결과가 나오든, 한쪽으로부터는 불만을 사게 마련이다. 정치인들이 벌인 막무가내식의 끝없는 항의와 압력에 검찰이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검찰의 모습은 바로 정치권 스스로 만든 것이다. 정치권은 야당 시절에는 검찰의 개혁을 강력히 주장하다가, 막상 정권을 잡고 여당이 되고 나면 그러한 주장을 슬그머니 거두어들이고 말았다.

DJ정부 역시 그랬다. 야당 총재로서 검찰의 편파적 수사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DJ와 당시 야당은 ‘특검제’를 비롯해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등의 파격적인 검찰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DJ는 집권 후 그 모든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검찰을 자신의 ‘시녀’로 만들고 말았다. 그 결과는 자신이 만들어낸 부패의 확산뿐이었다. 한나라당 역시 검찰 개혁에 대한 여러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공정하고 독립된 검찰을 만들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정치권이 만든 ´권력의 시녀´▼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사회는 법치주의의 이상이다. 어떤 성역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법의 존엄을 확보할 수 있다. 권력의 향배에 따라 움직이는 검찰은 이미 권력의 시녀나 다름없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새롭게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검찰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끝없는 부패가 우리의 주변을 맴도는데 그 부패 척결의 핵심적 장치인 검찰의 개혁에 대해 정치권이 이처럼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갑자기 찾아온 추위 이상의 서늘함이 우리 주변을 스친다.

박원순 변호사·´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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