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46…돌잡이 (12)

  • 입력 2002년 10월 11일 18시 04분


옛날에 아오모리 출신 산부에게 갓 태어난 남자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이 있다. 나는 깜짝 놀라 거절했다. 남의 집 아기 이름을 제가 지을 수는 없지요. 진짜 이름을 지어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미토에는 아기를 받아 준 산파에게 임시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임시 이름? 임시 이름을 지어 주지 않으면 아기 살갗이 죄 튼다고 합니다. 살갗이 튼다? 온 데가 다 트는 못난 아기가 된다고 합니다.

이십 대 였던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남동생의 준조란 이름을 말해 주었다. 젊은 애 엄마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준조, 준조, 준조라고 몇 번이나 이름을 불렀다. 지금은 그 풍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떠다니는 아기에게 임시 이름이란 옷을 걸쳐주어 산 자들 틈에 끼워 넣으려는 의식이었으리라. 이 손으로 받은 죽은 아이의 수를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첫 울음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죽었다. 탯줄을 목에 빙빙 감고 태어난 아기, 거꾸로 서 있는 바람에 질식한 아이, 한 손으로 들고도 남으리만큼 덜 자란 아이, 태어날 때부터 뇌가 없는 아이, 나는 흰옷과 온 손을 피로 물들인 채 갓 출산을 끝낸 젊은 여자에게 고해야 했다. 기운 잃으면 안 돼요.

이름을 지어줄 새도 없이 죽은 아기는 고이 잠들지 못한다. 산 자로 이름이 불리는 일도 없고, 죽은 자로 이름이 새겨지는 일도 없고 영원히 생과 사의 경계를 떠돌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더욱 가엾은 것은 이름을 지어줄 새도 없이 자식의 목숨을 빼앗긴 엄마다. 이름만 있어도, 그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 목소리로 어르고, 안아주고, 빌어줄 수 있는데.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머니 쪽이나 아버지 쪽이나 모두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을 싫어했는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가르쳐주어 이름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류기치, 스에, 시게사쿠, 요네.

언제 데리러 올지는 부처님 밖에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지난 달에 예순아홉 살이 되었다. 이제 슬슬 데리러 올 것이다. 내달에 태어날 증손자에게 살아 있는 존재로 기억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나모리 키와란 이름을 남길 수 있다. 이름은 대대로 물릴 수 있는 소중한 유품이니까.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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