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경근/'4900억' 계좌추적 하라

  • 입력 2002년 10월 3일 18시 01분


현대상선을 통한 대북 4억달러 비밀지원 의혹이 사실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의혹인지, 정부는 이를 국민에게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정부다.

의혹의 내용은 9월25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터져 나왔다. “현대상선은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6월7일 산업은행으로부터 긴급 운영자금으로 4000억원을 당좌대월로 지원받았고, 6월28일 다시 900억원을 받아 모두 4900억원을 지원받았는데, 이는 당시 환율로 정확히 4억달러이다”, “이 돈은 현대상선에서 쓰이지 않고 바로 현대아산으로 건너가 금강산관광 대가의 웃돈으로 북한에 넘어갔다”, “현대상선이 대출금 4000억원을 고위층으로부터 국가정보원에 넘겨주라는 지시를 받고 바로 수표를 찾아 국정원으로 전달했으며, 국정원은 다시 이 돈을 북한과 미리 약속된 해외계좌로 송금했다”,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엄청난 돈을 북한에 주었다”는 것 등이다.

▼현행법상 추적 가능▼

이 내용대로라면 정부는 헌법 위반의 책임이 있다. 은행 대출금은 결국 국민의 돈이고, 이를 그렇게 썼다면 결국 정부가 그 채무로써 대북 지원을 한 셈이다. 정부의 돈이 아닌 민간의 은행 대출금을 민간기업의 이름을 내세워 비밀리에, 현행 헌법상 유일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불법적 점거단체에 머물고 있는 북한(헌법 제3조의 해석과 관련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 등)에 불투명한 자금 공여를 한 것이다.

정부는 산업은행 대출금의 쓰임새와 용처 등 자금의 흐름을 밝힐 수 있는 금융거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 즉 ‘거래정보’를 스스로 조사해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 방법은 수표추적과 계좌추적이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4의 라 ‘금융실명거래 위반과 부외거래·출자자 대출·동일인 한도초과 등 법령 위반행위의 조사에 필요한 경우’ 등에 근거해 금융감독원장 등이 이를 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 법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이 법은 계좌추적 등을 행할 수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열거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인권보호를 위해 이를 확대해석해서는 안 되며, 따라서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는 부외거래·출자자 대출·동일인 한도초과 등의 법령 위반행위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반론은 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해석이다. 이 법의 목적은 금융거래의 정상화를 기함에 있다. 그 실현 방법의 하나가 실제 명의에 의한 금융거래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 비밀의 보장이다. 지금 쟁점은 개인의 예금비밀 보장에 있다기보다 정부의 돈 씀씀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의 문제라는 점에서, 실제 명의에 의한 금융거래라는 목적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법 조항 중 ‘금융실명거래 위반’이라는 말을 중시해 그 위배 여부를 따지기 위한 계좌추적은 가능하다.

또 다른 반론은 이 조항의 전제조건이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검사를 위해 필요로 하는 거래정보 등의 제공’이기 때문에 이러한 불법행위의 주체는 금융기관이어야만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무리한 해석이다. 이 조항의 문구는 말 그대로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검사를 위해 ‘필요로 하는’ 경우이지 불법행위의 주체가 금융기관임을 요하는 것으로 한정해 보기는 어렵다.

▼정부 앞장서 의혹 풀어야▼

국가기관의 돈 씀씀이는 예산과 예비비 등으로 계상해 미리 총액으로 국회의 의결을 얻든지, 또는 사후적으로나마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이 나랏돈을 쓰는 정부기관이 국민을 존중하는 자세이다. 현재의 금융실명법의 목적과 그 해석에 비춰보더라도 대출금 4억달러를 북한에 넘기고 다른 돈으로 메웠는지, 정부는 비밀지원 의혹의 사실 여부를 국민에게 밝힐 의무가 있다.

아울러 검찰이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거나, 아니면 국회가 국정조사를 발동해 해당 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이 문제를 처리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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