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AG]펜싱-유도 ‘金 물꼬’ 텄다

  • 입력 2002년 9월 30일 22시 07분


“시드니올림픽 평가전에서 1위를 하고도 국가대표에서 탈락했던 불운은 잊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제는 2년 뒤 아테네올림픽만 생각할 겁니다.”

30일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열린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유도 여자 78㎏급에서 한국에 유도종목 첫 금메달을 안긴 조수희(21·용인대)는 지난 날 불운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우승을 확인한 뒤에도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수희는 2000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세 차례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최고 점수를 얻었지만 국제대회 출전 경험이 전무하다는 이유로 올림픽대표 자격을 동갑내기 라이벌 이소연(용인대)에게 넘겼던 선수.

대한유도회의 이 같은 결정이 있자 조수희의 부모는 물론 당시 소속 학교였던 부산정보대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강력히 항의하는 ‘조수희 파동’이 일어날 만큼 유도계는 엄청난 몸살을 앓아야 했다.

한동안 실의에 빠졌던 조수희가 재기에 나선 것은 역설적으로 이소연의 부진 탓이 컸다.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했던 이소연이 저조한 성적을 거둔 뒤 조수희는 다시 대표 1진에 복귀할 수 있었고 이후 한풀이를 하듯 국내외 무대를 평정하기 시작한 것.

조수희는 지난해 열린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우승한 뒤 그해 9월에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이날 결승에서 맞붙은 마쓰자키 미즈호를 꺾으며 우승했다. 조수희는 이어 열린 2차와 3차 선발전까지 파죽지세로 1위를 고수하며 일찌감치 우승을 예약했다.

이날 결승에서 경기 시작 39초 만에 감아치기로 유효를 뺏은 뒤 2분을 남기고 허벅다리로 절반을 뺏으며 시종 마쓰자키를 압도한 것도 이런 자신감이 밑바탕이 됐다.

고교(경북체고) 시절까지 언제나 자신을 한 발짝 앞섰던 이소연의 자리를 어부지리로 얻은 것이 아니란 것을 확인시켜 주겠다는 오기도 조수희를 채찍질한 요인.

김도준 여자대표팀 감독은 “수희는 허벅다리걸기가 주특기이지만 오른쪽 잡기기술이 아주 강해 웬만한 남자 선수들도 오른쪽에 걸리면 빠져나가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라며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한국 여자 유도를 책임질 기대주”라고 말했다.

한편 금메달의 기대를 모았던 남자 100㎏급의 장성호(마사회)는 결승에서 ‘숙적’ 스즈키 게이지(일본)에게 판정패해 은메달에 머무는 아쉬움을 남겼다.

또 여자 78㎏이상급 최숙이(인천동구청)는 결승에서 신타니 미도리(일본)를 꺾은 순푸밍(중국)에게 절반패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고 강병진(부산시청)은 동메달에 머물렀다.

부산〓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천진난만한 10대 검객 아시아의 급소 찌르다…펜싱 女사브르 금 이신미

평소 여드름 자국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는 10대 검객이 마침내 꿈을 이뤘다.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았지만 그녀의 칼끝은 온갖 설움을 뚫고 아시아 정상을 찔렀다.

30일 부산 강서체육관에서 열린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은 이신미(19·한국체대)가 신데렐라로 다시 태어난 무대였다.

준결승전에서 세계 최강 탄슈(중국)를 15-11로 눌렀으니 더 이상 누가 무서웠을까. 이신미는 결승에서 대학 선배이자 대표팀에서 같은 방을 쓰는 선배 이규영(24·익산시청)과 우승을 다투게 됐고 마치 대회 첫 금을 향해 달려가듯 세찬 공격을 퍼부으며 15-8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경기가 끝난 뒤 이신미와 이규영은 다시 둘 다 환한 미소를 보이며 악수를 나눴다. 활짝 웃는 그들 모두가 승자처럼 보였다.

이신미는 “힘들 때마다 도와주고 많이 가르쳐 준 언니를 꺾고 우승해 미안하다”며 “단체전에서는 우리 함께 우승하자고 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98년 경북체고 1학년 때 펜싱을 시작한 이신미는 지난해 3월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내 선수치고는 큰 키인 1m73에 팔이 길어 펜싱 선수로는 타고난 신체조건을 지녔다. 올 8월 세계대회에 출전해 정상급 선수들과 당당히 맞서며 32강에 진입, 대표팀 코칭스태프로부터 ‘큰 일’ 낼 자질을 인정받았다.

이신미가 쾌거를 이룬 여자 사브르는 비인기 종목 펜싱에서도 ‘찬밥’ 취급이었다.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 종목인데도 전국체전에서는 정식 종목에도 들어가지 못한 것. 등록선수 18명에 실업팀은 고작 익산시청 한 개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부 뜻있는 지도자와 선수들이 마음을 모아 값진 열매를 따낸 것. 이신미 역시 “주변 여건이 어려워도 주윗분들과 힘을 합쳤다”면서 “여자 사브르가 좀더 활성화되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에서는 ‘주부검사’ 임미경(29·부산시청)이 98년 방콕대회에 이어 아시아경기대회 2회 연속 은메달을 머물렀다. 이 종목 3, 4위전에서는 서미정(22·전남도청)이 동메달을 보탰다.

부산〓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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