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실 조작 거짓말, 날아간 공자금

  • 입력 2002년 9월 29일 18시 14분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률이 있을 것이다. 실수를 저지르고도 책임을 피하려고 거짓말하는 기관이 있다면 이는 정부조직이라고 할 수 없다. 문 닫아야 할 부실종금사에 영업을 허가해 3조원의 공적자금을 날려버리고도 그 책임을 민간경영평가위원회에 뒤집어씌웠던 금융감독위원회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게 됐다.

98년 당시 종금사 경영평가위원장이었던 김일섭(金一燮) 이화여대 부총장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경평위는 대한, 나라종금에 대해 폐쇄를 의미하는 E, D등급으로 각각 판정했는데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부총장의 발언대로라면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경평위의 평가 결과에 따라 영업을 허가했다’는 금감위의 해명은 거짓말이 된다.

재정경제부 전신 재정경제원은 공적자금 관리를 총괄하는 곳이었다. 재정경제원이 경평위 의견을 무시하고 다른 회계법인에 따로 재실사를 시킨 후 영업재개 결정을 내렸다니 이런 공적자금 정책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실무담당자가 바뀌어 당시 재실사한 이유를 잘 알 수 없다”(금융감독원)거나 “재경원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고 경평위 의견을 100% 다 반영했다”(정건용 당시 재경원 금융정책국장, 현 산업은행총재)고 얼버무리는 것은 책임 있는 기관의 자세가 아니다.

부실종금사 문제는 그 후 감사원이 특감을 벌였다. 그러나 경평위에 대해선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니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김영삼 정권 말기에 출범한 경평위의 의견이 완전히 무시되었던 것도 대한, 나라 두 종금사와 현정권과의 관계에 의문을 갖게 하는 일이다.

외환위기 이후 156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이 중 69조원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부실금융기관과 부실기업 임직원, 그리고 회계사들까지도 대규모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하고 있으나 정부 관리들은 거의 예외다. 국회는 종금사 영업재개 의혹에 관련된 정부 관리들의 책임부터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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