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AG/선수촌]태극전사들 “배고파 못살겠어요”

  • 입력 2002년 9월 27일 18시 10분


‘잘 먹어야 힘을 쓸텐데….’

제14회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한국 펜싱의 간판스타 김영호(31·도시개발공사)는 요즘 현기증을 느낄 때가 있다.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선수촌 식당의 음식이 서양 식단 위주여서 입맛에 맞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오전에도 멀건 된장국에 밥을 말아 아침을 대충 때운 뒤 훈련장으로 떠나야 했다. 김영호는 “어제는 고추장에 밥을 비며 먹었다”며 “이러다 빈혈에 걸릴 지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선수촌 음식에 대한 불만은 김영호뿐만 아니라 한국 선수단 대부분이 겪고 있다. ‘여기가 안방인지, 남의 나라인지 모르겠다’는 것이 태극 전사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홈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칙사 대접을 바라지는 않았어도 기본적인 먹을거리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데 대해 한국 선수단은 어이없어 하는 분위기다.

동시에 3000명의 식사가 가능한 선수촌 식당에서 끼니 때마다 나오는 메뉴는 뷔페식으로 60∼65가지에 이른다. 하지만 요리 가짓수만 많을 뿐 한식은 두세가지에 불과하고 서양식 퓨전 요리가 대부분이라 한국 선수들의 식성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신선도와 질이 떨어진다는 게 선수들의 푸념이다. 1주일에 목요일 하루를 한식의 날로 정해놨지만 한창 때인 선수들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

남자 축구 김현태 골키퍼 코치는 “먹을 게 별로 없고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다”며 4강 신화를 이뤘던 월드컵 때와 달라진 대접을 꼬집었다. 민준기 럭비 감독도 “식사의 질과 양이 태릉선수촌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개선이 안 된다면 아예 밖에서 사먹을 계획”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펜싱대표팀의 한 코칭스태프는 “우리 종목은 대회 초반에 열려 그나마 다행”이라며 “후반부에 경기를 치러야 하는 다른 종목의 경우에는 체력 저하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여자 역도 선수들은 “불어터진 스파게티에다 잡채는 조금 상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23일 입촌한 수영 경영팀의 한 관계자는 처음 식당을 찾았을 때 황당했다고 했다. 손님 초대도 좋지만 한식은 없고 이슬람식만 가득했다며 예산만 허락된다면 당장 퇴촌해서 영양과 맛이 듬뿍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게 그의 하소연.

94년 히로시마대회와 98년 방콕대회보다도 음식이 형편없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3회 연속 아시아대회에 출전하는 남자 테니스 윤용일(삼성증권)은 “해외에서 벌어진 대회보다도 음식이 나쁘다”며 “나쁜 쌀을 쓰는지 밥맛도 떨어졌다”고 꼬집었다. 남자 농구 서장훈(삼성) 역시 “우리와 입맛이 많이 다른 방콕에서 열렸던 대회가 차라리 나았다”고 지적했다.

대한체육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운동선수는 한 끼에 보통 5000㎈ 정도 소비해야 하는데 선수촌의 경우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도대체 우리가 홈팀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음식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면 선수들에게 하루 50달러씩(1인당 선수촌 경비) 지급해 선수촌 밖으로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자칫 사기 저하를 염려한 한국 선수단의 항의가 잇따르자 선수촌 측에서는 27일 오전 대책회의를 열고 뒤늦게 부산을 떨었다. 서문수 선수촌 운영 1단장은 “한식 코너를 대폭 늘리겠다”며 “선수들이 쉰 음식을 먹었다면 더 큰 문제일 수 있으므로 세심히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부산〓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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