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스무날 동안의 황토기행´

  • 입력 2002년 9월 27일 17시 37분


◇스무날 동안의 황토기행(총2권)/임중혁 지음/각권 341쪽 405쪽 각권 1만2000원 13000원 소나무

나는 여행기를 좋아한다. 특히 역사학자가 자신이 전공하는 지역을 답사하면서 쓴 여행기를 더욱 좋아한다. 책 속에서 활자처럼 누워 있던 역사가 현장을 통해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또 평소에 아무리 과묵한 역사가라도 역사의 현장을 보고 난 뒤에는 어쨌든 속내를 실토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여행기를 읽는 또 다른 묘미이다.

임중혁 교수(숙명여대 사학과)의 ‘황토기행’은 바로 위와 같은 맛을 주는 책이다. 중국 고대사에 매달려 온 그는 서안과 같은 역사 도시나 태산과 같은 명산, 그리고 소주처럼 풍광이 뛰어난 화중 도시들을 제자들과 함께 찾아 다니면서 얻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는 천성적으로 좋은 눈썰미와 철저한 준비를 통해 역사책에 나온 인물과 현장을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하게 묘사한다. 명 십삼릉에 있는 신종 황제 어금니와 은나라 유적에서 본 고대 노예의 그것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면서 신분 차이를 읽어낸다. 그는 또 1400년 전에 지은 대동의 현공사(懸空寺)라는 절을 날개 접고 쉬는 한 마리의 나비로 묘사하였다. 글을 읽는 나는 그 나비를 당장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가 하남의 정주에서 힘들게 찾아간 곳 중에는 상왕조의 두개골 가공 공장이 있었다. 선민 의식이 강했던 상나라 사람들이 이민족 출신의 두개골을 술잔 등으로 가공하기 위해 만든 공장터였다. 상나라는 또 정교한 청동기 문명을 발전시킨 시대였으니, 우리는 이 여행기를 통해 문명의 배후에 가려진 역사의 진면목을 읽는다. 이런 면모는 그가 크게 공을 들인 공자묘와 태산, 진시황과 병마용, 양귀비와 현종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서안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임교수는 전설과 사실의 어느 중간쯤에 있는 이야기들도 흥미 있게 전해준다. 예컨대 10세기 초인 오대 시기에 공자의 후손에게 있었던 불행한 사건의 한 토막을 전하면서, 공씨 집안의 가훈에는 ‘부’(富)자의 갓머리를 쓸 때 맨 윗 점을 찍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다는 염원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소림사에서 9년간의 면벽 끝에 득도하였다고 알려진 달마 고사의 경우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지은이는 황토 속에서 살아온 민중의 중요성을 행간에서 강조하면서도 관심을 갖고 찾아간 곳은 대부분 권력자나 국가권력의 상징물이었다. 그 때문에 진시황릉이나 장성을 쌓도록 한 황제 권력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이 유적이 현대 중국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라고 믿고 있는 현실을 평가하는데 고민한다. 물론 이 고민이 그만의 것은 아니다.

임교수는 현대사의 상징적 공간인 천안문 광장이나 일본군 대학살사건의 현장인 남경, 그리고 오늘날의 중국을 상징한다고 하는 상해를 방문한 뒤에도 그 나름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천안문 광장 복판에 있는 모택동 기념관을 귀찮다는 이유로 밀쳐 놓았는데 여러 무덤을 찾아다녔으니 만큼 지하 궁전에 묻힌 역대 제왕과 달리 지상의 유리상자에 누워있는 모택동의 시신에서 다양한 상징들을 찾았어야 하지 않을까. 중국의 미래를 가늠한 전시 도시 상해보다 오히려 그 곳에 현대 중국의 비기가 숨어 있는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지은이의 부지런한 발품 때문에 크게 탓할 것은 못 된다.

유장근 경남대 인문학부 교수 yujang@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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