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만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 ´야생초 편지´

  • 입력 2002년 9월 27일 17시 17분


저자가 직접 그린 야생초 까마중. “작고 동그란 ‘시꺼멈’속에 조물주의 완전하심이 들어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사진제공 도솔
저자가 직접 그린 야생초 까마중. “작고 동그란 ‘시꺼멈’속에 조물주의 완전하심이 들어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사진제공 도솔
◇야생초 편지/황대권 지음/287쪽 9500원 도솔

‘소위 전향한 사람들이 단지, 살아 남기 위해 자기 생각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믿음을 바꾸는 일에는 나름대로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배교(背敎)가 순교(殉敎)보다 훨씬 더 어렵고 고귀한 일일 수 있다.’ (복거일 소설 ‘비명을 찾아서’ 중에서)

이 표현에 따르면 황대권씨(47)의 삶은 배교의 삶이다. 그는 삶에 의문이 생길 때 마다 깊은 성찰을 통해 믿음을 바꿔갔다. 그리고 그 생각에 책임을 졌다.

젊었을 적 그는 ‘내 인생은 내 의지로 바꿔갈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애초부터 ‘순진한 소시민’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내내(서울대 농대 74학번) 반 독재 투쟁에 가담했으며 졸업 후에는 미국에 유학해 정치학을 공부했다. 비록 그가 습득하는 지식이 통일과 민주화에 유용하게 쓰여지길 바랬었지만, 내심 그는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은 따로 있으며 나의 방식으로 세상은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은 늘 그의 의지를 배반했다.

85년 6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당시 유학파들 중에는 답답했던 국내 현실의 도피처로 유학을 택한 사람들이 많았고 황씨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렸다. 그러다 친구중 한 명이 귀국 길에 평양에 들렀다 온 것이 발각돼면서 황씨의 삶은 13년 2개월의 수형생활이라는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는 옛 안기부 지하실에 끌려 가 60여일 동안 온갖 고문을 받았다. 통닭구이, 물고문의 기억은 지금도 온 몸을 전율케 한다. 그는 그때 정신적 육체적 진공상태를 경험했다고 한다. 실험실의 개처럼 조건반사만 하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북한 갔다 왔지’ ‘너 간첩이지’하는 수사관의 물음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징역 선고는 날벼락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제까지 살아온 길과 믿어왔던 세상의 이치 모두를 의심했다.

이성(理性)이 기능하면서 그를 엄습한 것은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었다. 독방에 갇혀 그는 매일 밤낮을 울부 짖었다.

어느 날, 우연히 감방 벽에 도배된 ‘가톨릭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문자(文字)에 걸신이 들린 듯 온 몸을 꼬아가며 신문을 읽고 또 읽었다. 기사 중에는 ‘천주교 순교사(殉敎史)’라는 것이 있었는데 열 세살 어린 나이에 순교한 유대철 소년의 이야기가 특히 그의 가슴에 박혔다. ‘하나님 안 믿는다’ 한 마디만 하면 풀려 나는데 그 한 마디를 안 하고 모진 고문을 받다 숨진 순교자들. ‘그래, 나도 어쩌면 분단 국가의 순교자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고문에 내 양심을 팔았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그는 이렇게 가톨릭에 귀의한다. 그로서는 첫 번째 배교였다.

그는 절망과 분노와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신(神)에게 매달렸다. 감옥의 규율을 어겨서라도 법정에 서서 억울함을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어느날, 교도소에서 난동을 부렸다. 돌아온 것은 지옥같은 징벌방 생활.

온 몸이 포승으로 묶이는 짐승같은 생활을 하면서 그는 ‘주(主)’를 목놓아 찾았다. 왜 나를 버리시느냐고 원망도 하고 제발 모습을 보여 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신은 대답이 없었다. 두 달간의 징벌방 생활을 나오면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신은 없다.’ ‘신은 침묵이다.’ 두 번째 배교였던 것이다.

몸과 정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그는 만성 기관지염을 고치기 위해 교도소 담장밑 풀을 뜯어 먹다가 효과를 보게 되면서 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오랜 독방생활의 지루함이 그를 엄습할 때 찾아 오는 파리, 거미, 쥐들과 친구가 되었다. 풀 한포기, 벌레 한 마리와의 대화는 그렇게 이뤄졌다. 그러면서 그의 생각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는 인간만이 만물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신도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있고 남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도 다 나와 같았다. 모두 다 이 우주와 자연의 일부였다. 성경 경전을 밀어 놓고 노자와 장자 경전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이었다. 그가 선택한 세 번째 배교의 보상은 의외로 컸다.

지옥같았던 일상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남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니 감옥 생활이 즐거워졌다. 억울함을 밝힐 것도 포기해 버리니 자연스럽게 바깥에서 구명운동이 펼쳐졌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 나가는 것이었다.

98년 출옥 후 옥중에서 동생과 나눈 편지들을 모아 이번에 그가 펴낸 책 ‘야생초 편지’는 갇힌 공간에서 이처럼 자유를 얻었던 한 구도자의 사색일기다.

야생초를 화두로 펼쳐 낸 그의 삶과 자연에 대한 사색은 자신의 생각에 책임을 지려고 한 정직한 배교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모두 깊은 성찰 끝에 얻어진 단단한 주장들이다.

‘내가 야생초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 속의 교만을 다스리고자 함이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야생초라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렇게 소박할 수가 없다. 자연 속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있을지언정 남을 우습게 보는 교만은 없다. 우리 인간만이 생존 경쟁을 넘어서 남을 무시하고 제 잘난 맛에 빠져 자연의 향기를 잃고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해 나만이 옳고 잘났다며 뻐기는 인간들은 크건 작건, 못 생겼건 잘 생겼건 타고 난 제 모습의 꽃만 피워내는 야생초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

‘평화란 절대적 평온, 정지, 무사,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부단히 움직이고 사고하는 동적평형(動的平衡) 상태다. 사회가 평화롭다, 두 사람 사이가 평화롭다라고 할 적에는 내부적으로 부단히 교류가 이뤄지고 대화가 진행되어 신진대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화단 구석에 수줍은 듯 얌전히 피어 있는 주름잎 꽃을 보면서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저 작은 꽃을 피워 내기 위하여, 화단 구석의 내밀한 공간 속에 의젓하게 자리하기 위해 쉼없이 움직이고 있는 주름 잎의 내면을 그려본다.’

그는 지금도 무슨 무슨 주의자임을 거부한다. 현실은 흐르는 것이므로 생각도 흘러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의 흐름을 따라 사는 것이지요. 어떤 일이 이뤄질 때 인간의 의지가 기여하는 부분은 작고 미약합니다. 산다는 것은 결국 ‘흐름’을 읽는 것이고 그것은 나를 버릴 때 가능합니다. 청춘을 보낸 감옥에서 이걸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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