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이화교

  • 입력 2002년 9월 25일 18시 50분


이화여대를 나왔든 안 나왔든 386세대에게 이화여대 정문 앞 구름다리 이화교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학 옆 신촌역에서 오가는 기차가 이화교 밑을 지날 때면 이대생들은 저만치서부터 부리나케 뛰어오곤 했다. 기차 꼬리를 밟으면 미팅에서 킹카를 만난다는 속설 때문이다. 속 보일까봐 뛰지는 못하더라도 다리에 올라서는 순간 보폭과 속도를 조절하는 건 거의 본능이었다. 중장년 남성들 가운데도 이화교 앞에서 여자친구를 기다리거나, 쌍쌍파티 같은 특별한 날 이화교를 건너 금남의 집에 들어섰던 기억을 청춘의 아련함처럼 간직한 이들이 적지 않다.

▷폭 10m, 길이 60m의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1958년 완공 이래 이화교육의 버팀목이자 진리와 사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70,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엔 반독재 투쟁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화교 위에 빽빽이 모인 학생들 앞에 선 김옥길 당시 총장이 정문 밖에 집결한 전경들을 향해 “학생들을 잡아가려면 나를 먼저 잡아가라”고 호통쳤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준다는 ‘기차꼬리의 전설’은 그러나 요 몇년 사이 “꼬리를 밟으면 취직된다”로 바뀌었다. 여대생들의 무게중심이 사랑과 결혼보다는 취업과 자기발전으로 옮아갔다는 얘기다.

▷다리는 어느 한쪽과 보다 넓은 다른 쪽을 이어주지만 거꾸로 단절시킬 가능성도 있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이화교는 진리와 사랑, 속세와 학문을 연결하는 교량인 동시에 이화여대의 폐쇄성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런 이화교가 25일 철거식을 가졌다. 신촌역으로 고속철 회송선이 지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이 다리의 역사적 가치와 전통을 고려해서 초록빛 난간과 돌기둥까지 하나하나 뜯어내 정문 현판과 함께 캠퍼스 안에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화교가 없어진 자리에 2004년 들어서는 이화광장은 우리여성들이 세계로 나아가는, 말 그대로의 ‘광장’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화여대엔 아직도 완고한 폐쇄적 전통이 남아있다. 결혼한 여자는 입학할 수 없다는 금혼 학칙이 그것이다. 보다 많은 여성에게 교육기회를 주기 위해 설립된 여자대학에서 기혼여성에겐 그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것은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화교 해체와 함께 이 금혼조항도 철거할 수는 없을까. 이화광장 한편에 세워진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고 마음놓고 공부하는 엄마 여대생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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