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정, 제 역할 할 수 있을까

  • 입력 2002년 9월 24일 18시 22분


정부가 112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확정했지만 예년과 달리 사실상 임시예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데다 이라크전쟁 등 불확실한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6년 만에 균형예산을 회복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5년 동안 계속됐던 적자국채 발행을 약속대로 중단하지만 내년 상황이 균형재정만을 자랑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정부는 8∼9%의 경상성장률을 예상하고 있으나 이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외면하는 안이한 전망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여부가 불확실한 가운데 국제유가는 뛰고 전세계 주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내년 경기는 극히 불투명하다.

디플레 현상이 두드러지면 그동안 정부의 인위적인 부양책과 과다한 가계대출로 버텨온 우리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내년 성장률이 정부 예상치를 밑돌게 되면 균형재정은 물건너가고 추경예산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번 예산안에는 내년 경기가 부진할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다. 금융기능이 약화된 마당에 재정마저 경기조절기능을 못한다면 경제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정부는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아닌지 숙고해야 한다.

1인당 세부담이 처음 300만원을 넘어섰으나 정부는 조세부담이 높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장률이 떨어지면 조세부담률은 커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 봉급을 민간기업의 예상임금 상승률 5.0%보다 높은 5.5%나 올린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공무원 봉급이 이미 민간 수준에 육박한 만큼 경직성 경비를 줄이는 차원에서 조정했어야 옳다.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할 국회도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정부가 대충 짜놓은 예산을 대통령 선거 때문에 날림으로 통과시키면 국가적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예산이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국회가 잘 챙겨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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