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진영/‘장애’ 외면하는 사회

  • 입력 2002년 9월 19일 16시 56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실을 점거한 채 농성하던 ‘장애인 이동권연대’ 회원 30여명이 39일 만인 19일 농성을 풀었다.

이들이 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달 12일. 5월19일 서울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1급 중증장애인 윤재봉씨(62)가 장애인용 리프트에서 추락해 숨지자 서울시의 공개 사과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도 자유롭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출입문이 낮은 저상(底床)버스를 도입하고 지하철역의 리프트 시설을 엘리베이터로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 등 3명은 위원장실 점거와 함께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박 대표는 “2년 전부터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며 노숙 투쟁, 서울시청 점거 농성, 휠체어를 탄 채 버스 승하차하기 등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아무 성과가 없어 단식을 택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단식농성이라는, 가장 치열하고도 어려운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큰 성과는 얻지 못했다.

서울시는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 도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설치의 단계적 이행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당장의 사태를 모면하기 위한 공약(空約)일 수 있다고 장애인들은 의심하고 있다. 저상버스 추진위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저상버스가 언제 도입될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장애인들은 약속 이행에 대해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인권위 사무실을 떠났다.

한 장애인은 “당장 집까지 갈 일이 막막하고 집으로 가면 몇 달 뒤에나 바깥 나들이를 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뒷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이는 그들은 다시 장애물 경기를 하듯 살아가야 하는 험난한 세상으로 돌아왔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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