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형법학의 기본은 인간사랑 입니다” ´한국형법학´

  • 입력 2002년 9월 13일 17시 21분


◇한국형법학/이영란 지음/672쪽 3만원 숙명여대출판국

“지도교수이셨던 유기천 교수님께서는 형법학의 인간상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형법학은 가치규범학이고 어느 사회나 그 사회 특유의 가치형이 있게 마련이며 그 가치형의 기저에는 인간이 인간을 보는 형상 즉 인간상이 전제되어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산업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 위원장, 한국형사법학회 회장을 맡아 활발한 학내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영란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가 ‘한국형법학’(숙명여대 출판국)을 내놨다. 그는 이 책에서 그간에 한국형법학에 관해 강단에서 고민해온 내용을 담았다.

“인간에 대한 현대과학적 탐구 없이 인간의 자유를 운위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따라서 가치를 다루는 형법학은 고도로 발달된 현대과학과 병행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승들은 늘 형법학의 기본이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런 은사들의 철학과 연구업적이 학계에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아쉽게 생각해 왔기에 이번 저서에 그 정신을 담으려 했다.

그가 또 하나 안타까워하는 점은 한국 학자들이 독일법이나 일본법을 따르다보니 한국 현실에 맞는 형법학이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학계의 현실.

“형사법학계의 학자들 대부분이 형법개념정리와 논리구상에 전력을 다 쏟고 있는 동안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형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고 실제로 어떠한 제재가 가해지고 있는가 등의 문제는 형법학 연구와는 별개의 문제처럼 돼 버렸습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판례연구를 통해 학계와 실무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형법연구방법론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 형법학계의 큰 진전입니다.”

그는 일본과 달리 조직범죄의 비중이 크지 않은 상황, 여성문제가 많이 제기되면서도 여성 범죄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현실 등을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지적했다. 또한 범죄를 연구하는 범죄론뿐 아니라 범죄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형벌론도 함께 연구돼야 한다는 지론도 이 책에 담으려 했다.

이번 저서에서는 기본적인 용어와 문체에도 신경을 썼다.

“무비판적으로 사용해 온 일본식 또는 독일식의 용어들을 바로잡으려 했고, 문체도 우리 시대에 이해하기 쉽도록 했습니다.”

물론 이 교수도 이 저서에서 이런 여러 가지 의도가 다 실현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연구를 해 나가는 시작”이라며 보다 진전된 연구를 약속했다.

“우리나라 법학자들은 교과서가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연구논문이지요. 저도 타협점을 찾아서 이번에 교과서를 내기는 했지만 우리의 학문 연구의 풍토가 정말 좋은 연구논문을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인정하는 풍토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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