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교회 어린이선교원 흉기난동 전말

  • 입력 2002년 9월 12일 16시 10분


서울 광진구 군자동 모 교회 부설 어린이선교원의 텅 빈 복도. 전영한 기자
서울 광진구 군자동 모 교회 부설 어린이선교원의 텅 빈 복도. 전영한 기자

《4일 한 중년남자가 서울 광진구 군자동의 모 교회 부설 어린이선교원에 들어가 교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들을 마구 칼로 찌른 사건이 발생해 큰 충격을 줬다.

한국이 총기보유가 금지된 나라여서 그렇지 미국으로 치면 학교에 들어가 마구 총을 쏘아댄 것과 비슷한 사건이다. 사회적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익명의 존재로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정신질환자와, 보육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선교원이 만나 터진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엉성한 안전망을 또 한번 여지없이 드러냈다.》

범인인 황모씨(53)는 정신질환자로 추정된다. 그는 경찰에서 “아침에 집을 나서 근처 총신대역(서울지하철 4호선)에서 지하철을 탔으나 어느 역인지는 모르고 내렸다”며 횡설수설했다. 사건이 일어난 교회 근처에는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과 군자역이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어딘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길을 걷다가 두 역 사이 중간쯤에 위치한 한 교회로 불쑥 들어간 것이다.

왜 하필 많은 장소 중에 교회를 선택해 들어갔을까. 황씨는 “김일성이 죽인다고 해서 교회에 들어갔고, 교회에 들어가 이곳저곳에 숨었는데도 계속 죽인다고 해서 식당 구석으로 숨어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밝혔다. 나름대로는 두려움에 떨며 자기의 몸을 숨길 곳으로 교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하 주차장 통로로 해서 교회에 들어갔고 당시 교회 직원들은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김일성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는데 말로만 몇 달 전부터 계속 죽인다고 해서 도망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을 찌른 이유에 대해서는 “닥치는 대로 누군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황씨의 진술은 그의 머릿속에서만 논리적으로 연결될 뿐 현실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는 97년부터 서울 남현동에 있는 모 신경정신과를 1년에 5, 6차례 방문해 진료를 받았는데 이 병원 의사는 “그가 최근(두달전 쯤) 찾아왔을 때 예전에 없었던 환청의 고통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황씨는 오래 전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빌딩 청소부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최근에는 그마저도 그만뒀다. 그리고 그런 일이 좀처럼 없었는데 작년 4월 폭력, 올해 5월 폭력과 상해사건 등으로 잇따라 경찰에 입건됐다. 작년 사건은 무혐의 처리됐고, 올해 두 사건은 계류 중이다. 세 차례 모두 황씨가 직접 경찰서에 나가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황씨의 정신감정을 의뢰한 적은 없다.

황씨가 범행을 저지른 어린이선교원에는 52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었다. 사건 당일에는 3명이 결석하고 49명이 출석했다. 교사진으로는 방모 원감(35) 밑에 열매반(만 7세반) 새싹반(만 6세반) 씨앗반(만 5세 이하반) 등을 맡은 담임교사가 3명 있다. 교회 담임목사가 맡는 원장직은 담임목사가 공석이어서 비어 있다. 아이들은 원감을 포함한 교사 4명과 함께 낮 12시에 점심 식사를 한다. 황씨는 점심시간이 30분쯤 지난 낮 12시반경 아이들이 식사하고 있던 식당에 들어왔다.

범인이 교회에 들어가기 위해 이용한 지하주차장 입구

선교원 교실은 1층에 있고 선교원이 함께 쓰는 교회 식당은 지하 1층에 있다. 황씨가 들어온 시간에는 원감과 교사 2명이 식사를 일찍 끝낸 아이들을 데리고 1층으로 올라가 있었다. 당시 식당에는 식사속도가 늦은 만 5세 이하의 아이들이 많았다. 씨앗반 담임인 문모 교사(27)가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주방 아주머니 김모씨(39)가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문 교사와 김씨가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문 교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 식당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 교사는 교회가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속 보수공사가 있었기 때문에 식당에 공사하러 온 사람인가 생각하면서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문 교사는 무섭기도 하고 원감에게 빨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위험상태에 버려둔다는 것을 잊은 채 식사를 끝낸 일부 아이들을 데리고 1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바로 원감을 찾아 “식당에 잠깐 내려가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식당에는 주방 아주머니 김씨가 남아 아이들을 챙기고 있었다. 김씨도 이상한 남자가 한 아이를 잡고 주먹으로 배를 툭툭 치기에 느낌이 좋지 않아 문 교사처럼 일부 아이들을 데리고 1층으로 올라갔다. 김씨마저 자리를 비우자 황씨는 곧 주방으로 들어가 칼을 갖고 나왔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김씨가 1층에 다 올라섰을 때 곧바로 아이들 몇 명이 피를 흘리며 1층으로 뛰어왔고 김씨와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소리에 교사들이 뛰어내려왔다.

황씨는 양손에 칼을 잡고 아이들을 찔렀다. 체포 당시 길이 21㎝의 주방칼 1개와 길이 10㎝의 과일칼 2개를 양손에 들고 있었다. 주방칼은 김씨가 교회 식당 부엌에서 사용하던 칼이었다. 과일칼은 김씨가 평소 사용하지 않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황씨는 그 칼을 부엌 싱크대 밑에서 집어들었다고 했다.

교사들은 선뜻 칼을 든 황씨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그러나 방 원감은 “이 미친 ×야, 나한테 와라”고 소리를 질러 황씨의 주의를 흩뜨렸고 그 사이 구조요청을 받은 시민들이 들어와 황씨를 붙잡았다.

11명의 아이가 찔린 곳이 모두 46군데. 채 5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황씨는 최소한 46회 이상 칼을 휘둘렀다. 칼을 맞은 아이들은 그 자리에 쓰러지거나 소리를 지르며 계단쪽으로 도망쳤다. 일부 아이들은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갔지만 일부 아이들은 자기에게 닥친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도 모른 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을 놓아두고 두 어른이 자리를 비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주방 아주머니 김씨가 일용직 노동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들을 지킬 최종 책임자는 교사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인 이야기지만, 당시 교사의 어떤 대응이 올바른 것이었을까.

정미라 경원대 아동학과 교수는 “낯선 사람이 칼을 휘두르리라고까지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나름대로는 조금이라도 빨리 원감을 부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원감을 부르려고 했다면 자기가 가는 대신 아이들 중 하나를 보내든가 주방아주머니를 보내든가 했어야 했다. 유아교사는 끝까지 아이들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 철칙임을 잊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행동요령을 알아야 남의 아이를 돌볼 수 있다.

방 원감은 문 교사에 대해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문 교사에게 사실을 확인하려했지만 문 교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거부했다.

일반적으로 선교원 교사 채용에는 특별한 임용기준이 없다. 유치원은 어린이집과 다르고, 어린이 선교원은 어린이집과 또 다르다. 유치원은 교육부 산하 기관으로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임용될 수 있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관할로 사회교육원에서 1년의 교육을 받은 보육교사인정 수료증이 있으면 교사로 임용된다. 그러나 어린이 선교원에서 일하는 교사에게는 그조차도 의무적으로 요구되지 않는다. 교육부도 보건복지부도 관할하지 않는 행정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이 선교원은 원하면 어린이집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선교원은 정부의 지원을 받거나 행정지도를 받으면 신앙교육을 소신있게 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독립건물이 아닌 선교원은 낯선 사람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교회에 들어 있다. 황씨처럼 위험한 외부인이 침입할 가능성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주방 아주머니 김씨는 문 교사보다 늦게 마지막으로 식당에서 나왔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김씨의 두 딸은 이 선교원에 다니고 있다. 학부모들은 “김씨가 1층으로 올라갈 때 남아있던 자기 딸 한 명과 옆에 있는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올라갔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김씨는 칼에 찢긴 딸의 옷까지 보여주며 이런 주장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물론 보육담당자도 아닌 일용직 김씨에게 엄격한 책임을 지우기는 어렵다. 설혹 자신의 아이만 데리고 나갔다고 해도 그렇다. 그러나 김씨도 주방을 비워 범인 앞에 흉기를 방치했다는 점에서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야 할 ‘어른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를 잊어버린 셈이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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