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휴스 칼럼]분단의 아픔 녹였다

  • 입력 2002년 9월 8일 17시 49분


역사적인 스포츠 행사였던 88서울올림픽과 2002한일월드컵을 한국에서 직접 지켜본 사람으로서 7일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도 꼭 현장에서 보고 싶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역시 오길 잘했다. 비록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축구가 정치인들이 하기를 두려워하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제비 한 마리가 찾아왔다고 해서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 한번의 통일축구가 남과 북의 가슴아픈 분단현실을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날 경기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만들었다.

이달 말 열릴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남한 선수들이 북한선수들과 함께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할 예정으로 알고 있다. 이같은 스포츠 행사는 남과 북의 정부를 움직일 것이고, 이념 때문에 갈라진 이산가족에게 그들이 죽기전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게 될 것이다.

나는 최근 놀라운 정력을 과시하는 할아버지 축구선수들을 만났다. 대부분 나이가 70이 넘어선 할아버지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50여년전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축구선수들로 이북5도축구단을 만들어 지금도 매일 아침 한강둔치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남북이 갈라지지 전에 대표팀 센터포워드였던 손명섭씨는 “내 마지막 소원은 고향땅을 밟고 싶은 것이다. 그도 아니면 내 유골이라도 그곳에 뿌려지길 바란다. 북한에도 아직 가족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을 도울 방법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잊지 못한다. 그들도 우리를 잊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내가 비밀 한가지 얘기해주겠다. 나는 그 할아버지 축구단과 함께 뛴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가지고 놀았다. 그 할아버지들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축구를 했고 동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들은 능란한 기술로 훨씬 건장해 보이는 외국인을 조롱(?)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북5도축구단의 세 명을 통일축구에 초청했다. 이 노장선수들을 방금 북한에서 날아온 젊은 선수들에게 소개해줬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렇지 않아도 그 젊은 전사들(북한 선수들은 머리를 똑같이 짧게 깎고 있어 군인처럼 보였다)은 연일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남과 북의 정장을 입은 보디가드들에게 집중적인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상상도 못할 정도로 고급인 신라호텔에 묵고 있었다.

경기전날 북한선수들은 FIFA 마크가 새겨져 있고 통일 배지를 단 운동복을 입고 새벽 훈련을 했다. 그리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을 세계적인 팀으로 만든 파주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를 방문했다. 그것은 참 야릇한 여정이었다. 북에서 남으로 날아와서 버스를 타고 휴전선이 바로 옆인 곳을 방문하다니…. 그곳에서 단 수백미터 떨어진 곳이 통일전망대였다. 북한선수들은 그들 고향에 아주 가까이 다가섰던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 북측에서 들려주는 대남 방송도 들을 수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그들은 총격을 받거나 지뢰를 밟지 않고서는 그 선을 넘어설 수 없다.

북한선수들은 축구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남한의 월드컵 성공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남한과 겨룬다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보여줬다. 단 한골도 넣지 못했지만 기술이 수준급이었고 스포츠맨십도 좋았다. 김용수와 전영철은 충분히 남한의 월드컵대표로 참가했어도 될 만했다.

이날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히딩크 감독은 “축구가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람들을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번 방문으로 수십억을 벌었다. 이 정도면 북한 축구팀을 인수해도 될 정도다. 히딩크 감독은 북한의 기술 수준에 감명받았다. 관중석에선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과 이광근 북한축구협회 위원장, 이홍구 전 총리,박근혜씨 등이 감동 깊게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가 끝난 뒤 남과 북의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함께 들고 뛸 때 경기장안에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아리랑’은 인종차별이 철폐됐을 때 남아공에 울려 퍼진 ‘내 아프리카 꿈(My Africa Dream)’을 연상시킨다. 스포츠는 분열된 남아공을 하나로 만드는데 큰 일조를 했다. 이제 우리는 북한이 썩어가는 공산주의의 권력을 포기할 것인가, 남한이 통일비용을 부담할 의지와 돈이 있는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만일 이번 통일축구가 통일의 첫 단추를 꿴 것이라면 통일축구는 획기적 이정표가 될 것이다. 스포츠는 경계선이 없는 것이다. 특히 같은 민족이 벌이는 스포츠라면 더 말할게 없다.

잉글랜드축구칼럼니스트 robhu@compuser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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