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1호기 이상없나]지반 부등침하…안전논란 재연

  • 입력 2002년 9월 4일 18시 02분


《경북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아래의 지반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내려앉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원전 부지의 안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원전 운영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한나라당 김영춘(金榮春) 의원에게 제출한 ‘월성원자력 원자로 격납건물 부등침하 조사 및 분석 자료’에 따르면 월성원전 1호기 원자로 격납건물 아래의 지반에서 육지 쪽인 서쪽이 1978년 5월 15일 첫 조사 이후 지금까지 11.17㎜ 내려앉은 데 비해 바다로 향한 동쪽은 3.63㎜ 내려앉아 7.54㎜만큼 서쪽으로 더 기울어져 내려앉았다. 》

자료에는 월성원전 1호기 원자로 격납건물 아래의 지반은 동쪽으로는 석영안산암이며 서쪽은 집괴암으로 돼 있다. 둘 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암반이다. 같은 자료에서 2호기의 부등침하는 6.09㎜, 3호기는 1.82㎜로 나와 있다.

▽원전이 단층 위에 세워졌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지침’은 서로 다른 두 암반이 접촉하는 불연속면이 존재하는 지점에는 원자로를 건설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부지에 대한 지질 조사 과정에서부터 부등침하는 이미 예견된 것이며 당시 원자로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로 부등침하의 허용치를 12.95㎜로 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므로 월성원전 1호기의 부등침하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그 증거로 월성원전 1호기가 준공된 1983년 이후로는 부등침하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점을 들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계속해서 부등침하를 감시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될 경우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부등침하 가속화 우려〓그러나 지금의 안정화단계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있다. 무거운 구조물 아래의 지반이 내려앉는 것은 지반에 미세균열이 만들어지기 때문.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이진한(李晋漢) 교수는 “그동안의 침하를 그래프로 그려볼 때 미세균열이 열리고 자라는 속도가 닫히는 속도보다 약간 빠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세균열이 계속 열리고 자라다가 미세균열의 밀도가 임계값을 넘을 경우 균열의 성장 속도가 급격히 가속돼 지반이 파괴될 수 있다는 것.

그는 “안정화 단계에 들어왔다 해도 물질의 변위는 안정상태가 지속되거나 다시 변위가 급속히 일어나는 두 가지 중 하나”라며 “성수대교의 경우 교각의 미세균열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 안정화돼 있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무너졌다”고 말했다.

▽왜 1호기에 부등침하가 더 심한가〓지난해 공개된 1977년 자원개발연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발간 ‘월성원자력발전소 지점 지질조사보고서 검토보고서’에는 월성원전 1호기 원자로에서 불과 700여m 떨어진 지점이 활성단층일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본보 2001년 9월 10일자 보도).

이 교수는 “1호기 지반의 불연속면은 단층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근처의 읍천 단층과 연결돼 있거나 그 연장선과 나란히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월성원전 1호기에서 2㎞ 떨어진 읍천 단층은 지질학적으로 가장 최근인 13만년 이내에 활동한 적이 있는 제4기 단층으로 원자력법에 의해 원전 건설을 재고하도록 규정된 활성단층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철저한 지질조사 필요〓이번에 공개된 조사보고서에는 원자로 하부의 서쪽 암반은 화산쇄설물이 분출됐다가 떨어져 식은 집괴암으로 돼 있다. 만약 읍천단층이 1호기 원자로 하부 지반까지 연결돼 있다면 이 서쪽 암반은 퇴적암이어야 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풍화가 심할 경우 이 두 암상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정밀한 지질조사가 이뤄지면 서쪽 암반이 단층에서 나타나는 퇴적암으로 밝혀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영춘 의원은 “불연속면이 단층이라면 원전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만큼 지질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원자로에서 가까운 지반에 측정장비를 설치해 동해 쪽에서 한반도 쪽으로 조여드는 압축현상이 있는지를 확인하면 1호기 하부 지반의 불연속면을 따라 단층운동이 발생할지 여부를 보다 자신있게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완 동아사이언스기자 puset@donga.com

▼활성단층이란▼

미국 원자력위원회(NRC)는 활성단층을 “과거 3만5000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임이 있었거나 과거 50만년 이내에 두 번 이상의 움직임이 있었던 단층”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NRC의 규제지침을 따라 활성단층이 원전 반경 8㎞ 이내에 300m, 32㎞ 이내에 1.6㎞ 이상의 길이로 존재할 경우 원전 건설을 재고하거나 철저한 지질조사를 통해 지진에 대한 완벽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고시하고 있다. 한편 지질학계에서는 신생대 제4기 이후, 즉 최근 200만년 동안 활동한 흔적이 있는 단층을 활성단층으로 불러 훨씬 넓은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활성단층은 최근의 대만, 터키 및 일본 고베 지진 등 대규모 지진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경주 일대에 집이 무너지는 정도의 커다란 지진이 10여 차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1981년부터 지금까지 월성원전 인근 50㎞ 이내에서 리히터 규모 2.2(미진) 에서 4.2(중진) 이하 지진이 모두 20차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됐다.

▼지진땐 원전 왜 위험한가▼

지진이 일어났다고 해서 바로 원자로가 깨지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문제는 원자로 주변의 수많은 냉각수 배관이다.

지진이 일어나면 땅이 흔들리면서 원자로 배관이 충격을 받아 금이 가거나 균열이 생긴다. 지진 강도가 더 높아지면 영화에서처럼 배관이 빠지거나 깨지면서 냉각수가 흘러나온다.

배관에서 냉각수가 새어나오면 원자로를 식힐 수 없다. 아무런 조치없이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핵반응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핵연료봉(노심)이 녹기 시작한다. 최악의 경우 원자로가 폭발할 수 있고 주위 지역이 피해를 보게 된다.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제로 원전이 지진 때문에 피해를 본 일은 아직 세계적으로 한 번도 없다. 일어날 수 있는 지진의 세기와 주변 단층 등을 고려해 원전을 짓는 데다 배관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원전은 다중 방어체제로 보호되기 때문이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근처의 원전은 피해가 없었다. 체르노빌 등 지금까지 일어난 원전 사고는 대부분 운전자의 실수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원전을 설계했을 당시 지진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았거나 당시 몰랐던 활성단층이 새로 발견된다면 문제가 된다. 월성원전 주변의 활성 단층에 대해 논란이 거센 것도 이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의 양이원영 팀장은 “특히 월성 원전은 배관 구조가 지진에 약한 캔두(CANDU)형 원자로여서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원전의 내진 설계 기준을 지진 강도 0.2g(중력가속도)에서 2008년경 설치될 차세대 경수로부터 0.3g로 올릴 계획이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월성1호기 착공서 오늘까지▼

경북 월성원전 1호기는 부지 선정 때부터 지반의 안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돼 왔다.

1976년 7월 자원개발연구소(현 지질자원연구원)가 한국전력의 용역을 받아 미국의 지질조사 전문회사인 다폴로니아사와 캐나다의 원전설계 및 설비 전문회사 캐나톰사에 월성원전 1호기 부지에 대한 조사를 맡겼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다폴로니아사측은 “원자로에서 700m 떨어진 일명 ‘트렌치-5a’ 지점이 활성단층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충분한 조사를 한 다음 원전을 세워야 한다”고 한 반면 캐나톰사는 “풍화와 침식에 의해 지층이 내려앉은 ‘차별다짐현상’으로 지진의 위험이 없다”고 상반된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책임기관인 지질개발연구소도 당시 재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전은 78년 2월 공사를 시작해 83년에 월성원전 1호기를 준공했다.

활성단층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1995년 2월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 유력 후보지로 굴업도를 선정하면서부터다. 그해 12월 이곳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돼 처분장 건설이 백지화됐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97년에는 월성원전 1호기와 인접한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및 수렴리에서 단층이 발견됐다. 지난해에는 지질자원연구원이 2000년 과학기술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수렴 단층이 활성단층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가열됐다. 이 보고서는 캐나다 맥메스터대, 영국 옥스퍼드대 등의 연대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월성원전으로부??약 5㎞ 떨어진 곳에 있는 수렴리의 수렴 제1, 2, 3 단층을 활성단층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지질자원연구소는 이 보고서가 공개되자 처음에는 연대 측정 결과가 잘못된 것이라고 부인하다가 나중에는 받아들이면서도 단층의 길이가 원전 부지 지침에 나오는 300m보다 짧은 150m여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월성원전 1호기에서 불과 2㎞ 떨어진 읍천 단층 역시 신생대 제4기 이후 활동한 단층으로 그 길이가 법규상 활성단층의 제한치를 넘는 500∼800m로 추정된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이영완 동아사이언스기자 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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