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영균/술부담금

  • 입력 2002년 8월 27일 18시 11분


미국 뉴욕의 맨해튼섬은 ‘마나 하 타’라는 인디언 말에서 유래한다. 만취(滿醉)의 땅이라는 뜻이다. 1524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탐험가인 조반니 다 베라자노가 지금의 뉴욕에 처음 왔을 때 인디언들이 그에게 술을 대접했다고 한다. 인디언들도 그때 술을 많이 마시고 기분이 좋아서 그 섬을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술 소비량을 따지면 ‘마나 하 타’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 대략 한 해에 국내에서 출고된 술의 양은 2홉들이 소주병으로 84억4900만병에 이른다. 갓난아이까지 합치면 1인당 180병, 음주인구만으론 278병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음주인구가 워낙 많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과음하는 사람이 많다. 전체 음주인구 가운데 과음자 비율이 60%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불행히도 음주자의 약 20%가 간질환이나 위장병 등 술 때문에 생긴 병을 갖고 있다. 알코올중독증에 가까운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도 약 2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술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도 엄청나다. 치료비와 생산성 감소 등의 피해는 연간 16조원 정도로 국가 예산의 10%를 웃돈다.

▷어떻게 하면 술로 인한 폐해를 줄일 수 있을까. 담배의 경우를 보면 가격을 올리고 금연광고를 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실제로 2월부터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고 해서 건강보험에 대한 담배부담금이 2원에서 150원으로 올랐고 그만큼 담뱃값이 인상됐다. 또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금연광고가 나가고 나서 금연바람이 불기도 했다.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저도 하루 두 갑씩 피웠습니다. 이젠 정말 후회됩니다.” 어제 타계한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기침을 해 가며 금연을 호소하는 모습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담배처럼 술에도 부담금을 매기자는 발상이 나왔다. 술값에 5%씩 정신보건부담금으로 거두어 정신보건기금을 만든다는 것이다. 연간 약 1250억원이 걷히게 되면 보건복지부는 알코올중독증 치료사업 등을 하겠다고 한다. 술 소비도 줄이고 걷힌 돈을 좋은 데에 쓰겠다니 꿩 먹고 알 먹는 식이다. 술의 해악을 생각하면 옳은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술값이 약간 올랐다고 해서 술을 덜 먹게 될까. 세법에도 없는 술 부담금은 오히려 나라살림에 술과 담배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지금도 세금이나 다름없는 부담금이 100가지도 넘어 나라살림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국회의 통제 없이 멋대로 쓸 수 있는 부담금은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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