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그 나라의 역사와 말'

  • 입력 2002년 8월 16일 18시 00분


일본 강점기의 사회상을 신문 스크랩 및 메모로 정리한 ‘평범한 지식인’ 이찬갑(왼쪽)과 그가 남긴 스크랩 북 일곱권(가운데), 오산고 신축기사를 다룬 1939년 10월10일자 동아일보 기사스크랩(오른쪽). 사진제공 궁리

일본 강점기의 사회상을 신문 스크랩 및 메모로 정리한 ‘평범한 지식인’ 이찬갑(왼쪽)과 그가 남긴 스크랩 북 일곱권(가운데), 오산고 신축기사를 다룬 1939년 10월10일자 동아일보 기사스크랩(오른쪽). 사진제공 궁리


□그 나라의 역사와 말 / 백승종 지음 / 360쪽 1만5000원 궁리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신문의 서평은 흔히 이, 삼일의 여유밖에는 주지 않는다. 혼신의 노력을 다했을 저자의 분신과도 같은 책을 어찌 단시간에 제대로 평가할 수 있으랴. 부담스러워서 솔직히 피하고 싶은 것이 신문서평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우선 책의 분석대상이 식민지시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주요기사에다가 자신(이찬갑)의 글을 덧붙인 일곱 권의 신문스크랩북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찬갑은 이 책의 제목처럼 ‘역사’와 ‘말’을 강조했으며, 그것을 실천하듯 장남(이기백)은 역사학, 삼남(이기문)은 국어학의 대가가 되었다는 점도 흥미로왔다. 마지막으로 이찬갑의 신문스크랩북을 통해 식민지 지식인의 세계관을 풀어내고자 한 저자의 시도가 궁금했다.

먼저 이름없는 이찬갑이 남겨 놓은 신문스크랩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본격적으로 스크랩을 시작한 1937년, 그는 ‘이를 비롯하면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너무나 어두워가는 시대에 혹시나 광명 찾음을 볼까 하여 이를 비롯한다”고 반듯한 글씨로 적고 있다. 필자가 역사를 전공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치열한 기록정신은 훗날 항상 시대의 교훈이 된다. 저자인 백승종교수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저자는 신문스크랩북을 매개로 하여 평범한 지식인 이찬갑의 내면세계를 추적하고, 다시 그것에서 더 나아가 이찬갑이 살았던 시대를 읽어내고자 했다.

이 책을 읽으면 시대의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조선의 사명을 묻고 있는 성실한 지식인 이찬갑, ‘그 나라의 역사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가로서의 이찬갑, ‘회개’와 ‘심판’을 강조하는 기독교 도덕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이찬갑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척 공을 들인 저자의 노력들, 예컨대 이 시기 다양한 연구논문의 적절한 인용과 관련인물과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우리는 이찬갑이 살았던 시대와 이찬갑이라는 인물의 정신세계를 보다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이와 같은 내용들이 그다지 감동적으로, 그리고 처음 예상과는 달리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왜 그러할까? 이찬갑이라는 주인공의 한계일까? 이찬갑을 분석한 저자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렇게 느끼는 평자가 잘못된 것일까?

평자가 생각하기에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저자의 계몽적 글쓰기가 아닌가 한다. 저자는 이 책이 한 인물의 평전이 아니며, 구체적 개인이라는 창을 통해 시대의 관계망을 이해하는 미시사의 방법론을 적용한 연구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계몽성이 강한 주제별 목차를 설정한 뒤, 각 장마다 이찬갑에게 영향을 준 이승훈 등 유명한 인물들에 대해 너무 많이 서술하고 있다. 그 결과 신문스크랩에 담긴 이찬갑의 생각은 그들 유명한 인물들의 언행에 묻혀 대단히 왜소해졌다. 그러면서도 자꾸 이찬갑의 정신세계를 요약하여 강조해 주고 있다. 눈에 드러나는 ‘계몽성’은 이 시대 대중서의 금기사항이며, 더욱이 미시사의 서술방식에서는 ‘독약’이라고 평자는 믿고 있다.

김기덕 영상역사연구소장·kkduk15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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