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살색

  • 입력 2002년 8월 2일 18시 37분


사람의 피부색은 몇 가지나 될까. 인류학자들은 피부색을 기준으로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여기에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대표되는 홍인종과 동남아의 갈색인종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그러나 백인도 엄밀하게 보면 피부색이 하나가 아니고 흑인도 똑같은 검은 색이 아니다. 우리만 해도 유달리 희거나 검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사람의 피부색은 천차만별이다. 미국에는 피부색(Skin Color)이라는 이름의 크레파스 세트에 무려 18가지의 다른 색이 들어있다고 한다. 하긴 인종 전시장이라고까지 하는 미국이니 살색도 가지가지일 게다.

▷우리에겐 아직 살색이 한 가지뿐이다. 크레파스나 수채물감에 ‘살색’으로 이름 붙은 바로 그 색깔이다. 기술표준원이 1967년 한국산업규격을 정하면서 일본의 색깔 이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살색이다. 당시만 해도 외국사람 만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니 그랬다고 치자. 세계가 일일생활권이고 입만 열면 국제화를 외치는 요즘도 살색이 한 가지뿐이라니…. 일본은 이미 4년 전 살색을 엷은 오렌지색을 뜻하는 ‘페일 오렌지’로 바꿨다. 그런데도 우리는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 어린이들은 사람을 그릴 때 얼굴에는 으레 살색 물감을 골라 칠한다.

▷살색에 대한 고정관념은 피부색이 다른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키운다. 검은 피부의 혼혈아들이 왕따를 당하는 게 그렇고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차별대우를 받는 게 또 그렇다. 우리의 살색만이 사람의 피부색깔이라면 나머지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얼마 전 TV에 나온 한 외국인 근로자의 말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지하철에서 한 아이가 “저 아저씨는 왜 얼굴이 시커매?”하고 묻자 엄마가 “너무 안 씻어서 그렇단다”고 답하더라는 얘기다. 피부색은 단지 멜라닌색소가 많으냐 적으냐의 차이일 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크레파스와 수채물감의 특정색을 살색으로 이름지은 것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에 대한 침해’라며 기술표준원에 이름을 바꾸라고 권유했다. 살색을 대신할 이름으로는 복숭아색 살구색 등이 거론되고 있다는 얘기다. 늦었지만 잘된 일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이번 조치가 검은 피부에 대한 멸시뿐만 아니라 흰 피부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도 없애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살갗을 하얗게 만든다며 값비싼 미백화장품을 사 바르고, 그것도 모자라 피부를 벗겨내는 박피술까지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 아닌가.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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