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커룸 엿보기]NBA 리플레이 제도 도입 배경

  • 입력 2002년 8월 2일 18시 19분


미국프로농구(NBA)가 기어코 인간의 한계를 인정,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무슨 소리냐고?

NBA가 다음시즌부터 판정에 이의가 있을 때 녹화테이프를 되돌려보고 판정(또는 번복)하는 리플레이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세계 최고의 리그라고 하는 NBA도 KBL과 마찬가지로 심판판정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게다가 팀당 82경기씩 하는 정규리그 때와는 달리 숨막히는 ‘진짜전쟁’을 하는 플레이오프에선 심판판정에 대해 더욱 민감해지게 마련.

LA 레이커스의 3연패로 막을 내린 이번 플레이오프에선 심판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일방적인 경기를 시소경기로 만들어 심판의 힘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향이 농후해졌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일방적인 경기는 재미가 없어 시청자들이 TV채널을 다른데로 돌리게 만드니까. NBA 사무국으로서는 막강전력 레이커스의 일방적인 승리를 바라지 않을 뿐 더러 또 인기 없는 엉뚱한 팀이 챔피언 반지를 끼는 것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고민은 시작된다. 이렇지도 저렇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심판들이 그들의 ‘투명 손’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박빙 승부 만들기에 나섰다.

▼“시켜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분위기라는게 있다.”▼

누구라고 밝힐 순 없지만 한 KBL 심판의 자기고백을 들어보자. ‘왜 엉뚱한 판정이 나오냐?’는 질문에 그는 “누가시켜서 하는 일은 아니다. 분위기라는 게 있다. 어디가 이기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되고, 또 일방적인 게임이 되면 안되고 등등.”

확실히 누가 이겼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극적으로 승부가 결정됐으면 하는 분위기는 있다. 하지만 정정당당한 실력보다 흥미와 수익이 우선되서야…. 더 큰 문제는 농구팬의 눈높이가 심판의 농간을 구분 못할 정도로 낮지 않다는 것. 일순간 짜릿한 승부의 맛을 느낄 수는 있지만 이 일이 반복되면 말 그대로 제살 깎아먹는 자살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NBA 플레이오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살펴보자.

샬럿 호네츠와 올랜도 매직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2차전. 92-92 동점상황에서 호네츠의 배론 데이비스가 종료버저와 함께 회심의 3점슛을 던졌다. ‘IN TIME’. 분명히 종료버저소리보다 먼저 볼은 데이비스의 손에서 떠나있었다. 그러나 NBA 심판경력 23년째인 버니 프라이어 주심은 양손을 가로 저었다. 계속 반복된 녹화장면이 오심임을 보여줬지만 단호했다. 결국 연장전 끝에 호네츠가 승리하긴 했지만 논란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왜 그랬을까. 1차전에서 호네츠는 매직에 102-85로 대승을 거뒀다. 그것도 원정경기에서. 매직이 홈 두경기를 모두 패배하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분위기가 작용했던 것 같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뉴저지 네츠와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1라운드 5차전. ‘Mr. 클러치’ 레지 밀러도 슛을 넣고 나서 마냥 기뻐할 순 없었다. 오히려 어찌보면 쑥스러워하는듯 보였다.

90-92로 단 2점 뒤진 시간. 4쿼터 종료버저가 울리는 순간 밀러는 턴을 하며 슛을 올렸다. 하지만 볼은 분명히 버저가 울린 뒤 였지만 이번엔 25년차 심판 조 크로포드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슛을 인정했다. 결국 두 번의 연장전 끝에 네츠가 승리했으니 망정이지 페이서스가 2라운드에 올라갔다면 뉴저지에 ‘폭동’이 날 법했다.

이 정도만 해도 사정은 나은 편이다. L.A 레이커스와 새크라멘토 킹스의 서부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 2쿼터 끝에 레이커스 사마키 워커가 30피트짜리 장거리 3점포를 쏘아올렸다. 이 슛이 인정되자 킹스 벤치는 흥분, 거세게 항의했으나 번복이란 있을 수 없는 일. 나중에 비디오 판독결과 워커의 슛은 0.07초 늦게 손을 떠나 오심임이 밝혀졌지만 흥분한 킹스만 제대로 플레이를 하지 못해 무릎을 꿇었다.

판정시비가 자주 불거지자 데이비드 스턴 커미셔너가 입을 열었다. 레이커스-킹스의 5차전에 참석한 그는 경기전 “인간으로서 한계를 갖고 있는 심판들이 겪는 판정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리플레이 화면의 도입에 적극 나설 생각”이라고 밝혔다. 고민이 이만저만하지 않았는지 평소 ‘똘똘이’ 같은 모습은 오간데 없이 힘없이 말을 이어갔다.

커미셔너의 심판판정에 대한 언급이 있은 직후 벌어진 경기에서 반대로 1점차로 진 레이커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종료직전 레이커스의 브라이언트가 슛을 날릴 때 킹스 바비 잭슨이 분명히 반칙을 범했는데 코 앞에 있던 심판이 이를 무시했다는 것. 로버트 오리는 인터뷰에 나와 “TV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항변했다.

▼“오심 자체도 재미중에 하나다”▼

커미셔너까지 나섰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아마도 이번 플레이오프 최악의 승부는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 동부 네츠와 보스턴 셀틱스전에선 심판의 행동에 참다못한 관중이 심판에게 맥주잔을 집어던져 경기가 약 3분간 지연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레이커스-킹스전은 4쿼터 박빙 때 엉뚱한 오심(비디오 리플레이결과 정말 황당한 휘슬이었다)으로 6반칙 아웃을 당하게 된 킹스의 블라데 디바치가 벤치로 돌아가며 박수를 치며 관중들의 야유를 유도했다.

점수는 박빙이었지만 팬으로서는 정말 짜증나는 게임이었다. 4쿼터에서 레이커스가 얻어낸 자유투는 무려 27개. 반면 킹스는 9개. 아무래도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었다. 급기야 이 경기는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번졌다. 저명한 환경-소비문제전문 변호사이자 미국 녹색당 대통령후보이기도 했던 랄프 네이더가 6차전에 문제가 있다고 스턴 커미셔너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네이더는 “대중의 신뢰심이 심각하게 흔들렸다. 반드시 경기를 다시 봐서 공정성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않고 이런불공정한 일이 계속된다면 공정성과 정의라는 문제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네이더가 화가 난 이유는 휘슬이 공평하지 않았다는 것. 네이더는 골수 농구팬 답게 “종료 20초전 브라이언트가 마이크 비비를 엘보우로 가격했는데 왜 심판들이 이를 그냥 넘어갔냐”고 질타했다.

팬이 들고일어날 기세를 보이자 파이널에 와서 심판들의 ‘농간’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4차전 때는 1,2쿼터에서 약간의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고 네츠의 케년 마틴과 레이커스 짐 클리몽스 코치에게 차례로 테크니컬 파울을 주며 권위를 세워나갔다.

리플레이제도가 도입된다고 해도 심판에 대한 불신이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리플레이의 범위를 매 쿼터 직전 버저비터 여부, 3점슛이 확실한지 정도로 규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반적인 심판의 불공정성에 대해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편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99년 6월1일 플로리다 말린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공이 바운드된 뒤 담장을 넘어갔다. 심판이 처음엔 이를 홈런으로 인정했다가 리플레이 화면을 보고 나중에 2루타로 정정했다. 그러자 내셔널리그 렌 콜 멘회장은 심판에게 경고를 줬다. 이유는 “오심 자체도 야구의 재미중에 하나다. TV화면을 보고 판정을 번복하는 것은 야구인다운 행동이 아니었다”라는 것이었다.

NBA는 인간의 오류를 인정하고 기계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어느쪽이 옳은 지 곰곰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전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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