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자연과 하나돼 욕심없는 삶 네팔 히말라야 고산족

  • 입력 2002년 6월 21일 19시 00분


에베레스트 하이웨이 [사진=석동률기자]
에베레스트 하이웨이 [사진=석동률기자]

《‘옴 마니 파드마 훔’(오, 천상의 보석처럼 연꽃에 앉아 있는 신이시여!) 네팔 에베레스트로 오르는 길목의 마을 입구에 장승처럼 서있는 바위에 조각된 글이다. 셰르파족, 네와르족, 나와족, 팔도르지족, 추세르와족 등 네팔 산간지대에서 살고있는 70여 종족 중에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 셰르파족이 주로 살고 있는 네팔 히말라야 동북쪽의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이곳 사람들은 에베레스트를 ‘초모랑마’라고 부른다. 티베트어로 대지의 여신이란 뜻이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1852년 인도 축량국이 고도 측정을 하면서 전임 장관인 영국인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따 붙였기 때문에 고산족들에게는 사실 생소한 고유명사인 셈이다. 》

☞'산과 사람' 연재기사 보기

라마불교도이면서 샤머니스트이기도 이들은 설산 주변에서는 절대 피를 보지 않는다. 설산 정령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다.대신 그들의 주식인 야크 닭 물소 등을 마을로부터 해발 1000∼2000m 낮은 곳에까지 옮겨가서 도살한다.그들은 하늘이 가까워질수록 몸을 바짝 낮춘 야생화처럼 겸손하고 소박하다.

에베레스트 원정대원들이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 이틀씩 머무는 마을인 피에르체(4240m)의 주민 파상 푸티 셰르파(24·여)도 이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왕복 14시간 이상의 다리품을 팔아 물건을 띠어다가 원정대원들을 상대로 숙식업 장사하고 있다. 그에게 “생활이 고달프지 않는냐”고 묻자 “이 정도면 아주 풍족한 생활이어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며 수줍은 듯 웃었다.

사방은 온통 설산이고, 2500m 이상 고지대에서만 살 수 있는 야크(소처럼 생긴 동물)의 방울소리만 요란하게 들리는 총 12가구의 작은 마을.모든게 부족할 듯 하지만 막상 그곳에서 살고있는 주민들은 ‘욕심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낙원’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남체마을(3440m)의 7일장(남체 바자르)에서 장사할 물건을 구입해온다.

그보다 더 먼 곳에서 살고 있는 고산족들에게도 1∼3일씩 걸어야 도착하는 남체 7일장은 유일한 생필품 공급원이다. 기자가 6월 중순 남체를 찾았을 때도 마침 7일장이 열렸다. 새벽부터 150여명의 상인들이 좌판을 펼쳤고, 생강 고소열매 당근 고추 녹두 설탕 바나나 옥수수 건전지 석유 닭 쌀과자 운동화 양파 양곡 등 여러 생필품들이 활발히 거래됐다.

동네 아우인 나크파 도마 셰르파(21·여)와 전날 저녁 남체에 도착했던 파상 푸티는 이날 새벽 시장에서 설탕 쌀 야채 우유 식용유 등을 구입해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 어머니 등 네식구의 장사밑천을 베낭에 지고 가는 그는 전문 산악인들도 1박2일 걸려 도달할 수 있는 남체∼피에르체간 산악로를 7시간에 주파한다.

사가르마타 국립공원내 고산족들은 자연과 철저히 동화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실수는 있었다. 땔감을 얻기 위해 수십년간 산속의 나무들을 마구 벌목했던 것.

이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부메랑처럼 돌아온 자연 재해의 위력을 실감한 이들은 몇 년전부터 환경문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해발 3440m 7일장
1950년대 말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기 시작한 히말라야 남체(3440m) 마을의 7일장. 네팔 히말라야 산속의 유일한 생필품 구입처로 고산족들은 2,3일씩이나 걸어서 이곳에 도착해 물품을 구한 뒤 다시 등짐을 지고 되돌아 간다. [사진=석동률기자]

이 중 야생동물 보호를 목적으로 전 세계에 지부를 두고 있는 세계야생재단(WWF)의 후원으로 시작된 양묘사업이 대표적인 환경보전 사업으로 꼽힌다.

사마르타 국립공원 주변에는 5개의 양묘장이 주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으며, 이 곳에서는 주로 2500∼3500m 지대에서 자라나는 ‘셀라’ ‘고프레’ 등 소나무류를 키우고 있다.

팍딩(2610m)의 양묘장을 책임지고 있는 츠링 돌마 셰르파(30·여)는 “수만주의 종묘를 2년간 키워 길이 20㎝ 크기로 자라면, 85가구의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이를 산속에 심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년전부터 함부로 벌목하면 벌금을 물리고 있다. 벌금은 한 그루 당 미화 20불 가량으로, 네팔에서는 짐꾼(포터)들의 3일치 일당에 맞먹는 액수.

주민 자율반을 구성해 2년째 도벌(盜伐) 단속활동을 펼치고 있는 파상 푸티의 남편 까미 도르지 셰르파(38)는 “나무가 마구 잘리면 고산지대에서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제는 주민 모두 깨닫고 있다. 그래서 단속의 눈길을 피해 밤에 몰래 벌목하는 행위도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지구의 지붕 속에서 자연의 일부처럼 살아온 고산족들이 뒤늦게 깨닭은 자연과의 진정한 공생법이다.사가라마타 국립공원(네팔)〓박희제기자

min0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