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축구이야기]내가 꿈꾸는 한국축구의 미래

  • 입력 2002년 6월 17일 00시 14분


48년 만의 첫 승과 16강 신화. 아직도 내 가슴은 뛰고 있다. 더불어 일본의 16강 진출 또한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러나 월드컵 이후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의 격정을 조금 억누르고 싶다.

일본의 탄탄한 사회체육 환경에 비해 한국은 아직 경제적 기반과 심리적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한국의 아마축구대회에서는 열악한 환경 탓에 대학 선수가 경기 도중 사망한 일이 있었고 프로축구 역시 스탠드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빈곤에 허덕였다. 16강 진출을 ‘신화’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부실한 체육 환경에서 가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국가대표선수들의 승전보는 그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과 박자를 맞출 때 참으로 값진 것이다. 걸출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따로 모아 집중적으로 훈련해서 얻은 성과는 그 찬란한 영광에도 불구하고 잠시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허전함을 동반한다. 당장의 저녁 식사는 성찬으로 마쳤으나 월말에 들이닥칠 신용카드 고지서를 생각하면 소화불량에 걸릴 것만 같은 우울한 심정이다.

이 점에서 나는 한국의 축구가 벨기에나 덴마크, 스위스나 호주처럼 ‘강소국’의 탄탄한 미래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세계 최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누구도 얕잡아 볼 수 없는 국가 대표팀, 그리고 동네마다 울창한 숲이 있고 그 속에 쾌적하고 아담한 축구 시설이 있어 누구라도 원하는 시간에 일상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이뤄지기를 나는 원한다.

그것이 한국 축구가 진정으로 꿈꿔야 할 미래다. 그러한 환경은 경제적 여유는 물론 사회문화적인 발전과 삶에 대한 풍요로운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축구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6강 진출이 더 이상 ‘신화’가 아니라 일상이 되고 그 승전보를 동네 숲 속의 운동장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나는 꿈꾼다.

정윤수/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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