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찬/분단과 소외 넘어 하나로

  • 입력 2002년 6월 15일 22시 28분


대한민국이 월드컵 16강을 품에 안는 순간 전국은 붉은 바다의 물결로 넘실거렸다. 붉은 가슴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던 환희는 4700만 국민을 한 생명체로 만들었다. 골을 넣기 직전 그라운드에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박지성의 고백은 핵심을 파고드는 말이었다. 그 순간 우리 모두가 혼자였다. ‘나’가 ‘우리’였고, ‘우리’가 ‘나’였다. 우리는 그때 똑같은 열망을 가진 한 생명체였다. ‘붉은 악마’의 응원석에서 “이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숨을 쉰다”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국민은 ‘붉은 악마’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붉은 악마’ 회원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문을 풀어 가는 데 적잖은 단서를 제공한다.

▼16강 진출에 국민 열광▼

“우리는 축구경기를 그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응원을 통해 경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경기장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기만 하는 수동적 타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선수가 공을 가로채면 응원의 박자가 빨라지고, 공을 빼앗기면 박자가 느려진다. 빠른 응원은 우리 선수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고, 느린 응원은 상대 선수의 흐름을 빼앗아 놓는다. 이렇게 응원하다보면 우리의 몸은 자연스레 경기의 흐름 속으로 빠져들면서 객체의 위치에서 주체의 위치로 이동한다. 그리고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붉은 악마’가 12번째 선수로 불리는 까닭은, 더 나아가 국민이 ‘붉은 악마’에 열광적으로 빠져드는 까닭은 여기에서 확연해진다. 선수들의 몸과 ‘붉은 악마’의 몸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문명은 세계의 중심에서 인간을 끊임없이 분리시켜 왔다. 분리가 낳는 것은 소외이며, 소외가 낳는 것은 증오다. 세계인들이 작고 둥근 공 ‘피버노바’를 향해 몰려드는 것은 일체(一體)에 대한 희구의 표현이다.

붉은 물결이 시작된 것은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가 있었던 6월 4일이었다.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은 물론 전국의 주요 도시가 붉은 물결에 휩싸였다. 붉은 물결은 대한민국을 단숨에 축제의 땅으로 변화시켰다. 축제의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 다르다. 엄숙과 경배의 대상인 태극기가 몸 치장의 도구가 되고, 몸 자체가 페인팅이 되는 것은 일상의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연출하는 이 역동적 문화현상이 한국사회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한국의 ‘붉은 악마’는 다른 나라의 서포터스에 비해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남과 북이 분리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 이후 적색 공포증, 즉 ‘레드 콤플렉스’는 한국사회의 가장 강력한 권력의 네트워크로 군림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붉은색만 보면 가슴을 쓸었다. 오죽하면 60년대의 어린 아이들이 북한 사람을 몸이 빨갛고 머리에 뿔이 난 괴물로 생각했을까.

‘붉은 악마’가 탄생한 것은 1997년 PC통신의 축구동호회원들이 프로축구 단체관람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이 젊은이들은 북한 사람을 괴물로 생각한 세대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조직을 ‘붉은 악마’로 명명한 것은 그들의 정신이 레드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린 아이였던 1980년 5월 남녘도시 광주는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근원적이며 전면적인 물음을 제기했다. 이 물음이 일구어낸 것이 한국 민주화의 출발점인 87년 6월항쟁이었다. 6월 10일부터 시작된 민주화 대장정은 6월 26일 전국 37개 도시에서 100만여명이 시위에 참가함으로써 절정을 이루었다. 한국과 미국의 축구경기가 벌어졌던 2002년 6월 10일에도 100만여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붉은 악마’의 옷을 입은 그들이 한결같이 외쳤던 것은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였다.

▼대립에서 공존으로의 전환▼

6월항쟁 2년 후인 89년 2월 헝가리와의 수교가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41년 만에 공산국가와 맺은 첫 국교였다. 평화통일의 전제조건은 대립에서 공존으로의 전환이다. 헝가리와의 수교는 평화통일을 향한 한국의 대장정이 국제적으로 확인된 첫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2000년 6월 15일 마침내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악마의 괴수’였던 북한 최고지도자와 함께 평화통일 실현에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한 공동선언을 세계인에게 천명한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2주기를 하루 앞둔 2002년 6월 14일 대한민국은 다시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분리에서 일체로 나아가는 장엄한 물결로.

정찬 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