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심지연/6·13선거는 6·10의 연속

  • 입력 2002년 6월 12일 18시 40분


6월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인파의 열정과 함성은 대한민국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한편의 드라마였다. 앳된 학생부터 장년의 신사에 이르기까지, 엄마의 품에 안긴 꼬마부터 히딩크 가면을 쓴 키다리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세찬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대오를 흩뜨리지 않고 우리 선수들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환호하며 응원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어서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이제는 우리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역사적인 퍼포먼스였다.

▼시민관심이 민주주의 기본▼

그러나 우리를 더욱 자랑스럽게 만든 것은 이날 이 자리가 15년 전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해 6·29선언을 이끌어낸 그날 그 자리였다는 사실이다. 1987년의 그날도 서울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거리는 이에 못지않게 많은 인파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이 떠나갈 듯한 함성도 그치지 않았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최루탄 가스가 자욱한 광장에서 “독재 타도! 직선 개헌!”이라는 대학생들의 구호가 그치지 않는 가운데, 이들의 선창에 따라 넥타이부대도 ‘님을 위한 행진곡’과 ‘늙은 군인의 노래’를 비장하게 따라 불렀다. 6월항쟁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고, 이를 계기로 완만하지만 우리의 정치는 변화와 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민주화로의 이행도정을 밟을 수 있었다.

15년의 세월이 흐른 2002년의 이날 이 자리에는 그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거리 가득히 비장함은 서려 있었다. 그러나 이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겨루어 이기겠다는 각오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필승 코리아”와 “아리랑”을 따라 불렀고, 국적 불문하고 박수를 치며 “대∼한민국”을 연호했으며,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큰소리로 “우리는 해냈다”고 외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내재하는 모든 균열이 봉합되어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세계를 향한 이러한 외침이 공허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의 내실화와 함께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예산을 들여 지은 경기장이 시민의 외면으로 애물단지가 되는 일이 없도록 중지를 모으는 작업과 동시에 6월항쟁의 산물로 싹이 튼 민주주의가 더 잘 자라 결실을 보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장의 활용은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주민 친화적인 행사를 통해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을 때 월드컵 첫 승의 기쁨이 우리의 뇌리에 영원히 계속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공고화도 시민의 관심과 애정, 참여를 필요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6월 13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의 의미는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지방선거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전개한 민주화운동이 결실을 보아 실시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5년 전 그날 그 자리의 눈물과 함성이 있었기에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불의와 압제에 항거한 대가로 획득한 것이기에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며, 이런 연유로 선거 참여가 적극 요청되는 것이다.

둘째,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처럼 주민의 높은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만 지방자치가 제 역할과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주민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참여하지 않을 때 부정과 비리가 자리하게 되어 결국 주민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주민의 참여는 필요하다.

▼지자체 개혁해야 정부 변화▼

셋째, 주민의 참여로 지방자치가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게 되면 중앙정치도 이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주민의 통제가 비교적 용이한 자치단체부터 개혁해 그 변화의 물결이 중앙정부에 미치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발전을 더 확고히 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균열을 봉합하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 월드컵이었다고 한다면, 우리 정치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는 것은 지방선거라고 할 수 있다. 자발적인 봉사와 응원으로 월드컵을 성공시킨 것처럼,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로 우리 정치의 변화와 개혁을 완성하는 기회로 지방선거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심지연 경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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