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칼럼/김형찬]사각형 안의 둥근 공

  • 입력 2002년 6월 8일 23시 13분


TV를 켠다. 맥주나 아이스크림이라도 한 손에 들고 소파에 앉는다. ‘나도 월드컵이란 거 한 번 봐볼까? 어, 어, 야! 이거 장난이 아닌데∼.’

이게 아니라면, 초여름 저녁바람이라도 쐴 겸 대형화면이 마련된 거리로 나선다. 세종로 네거리나 대학로, 잠실종합운동장, 아니면 여의도 한강둔치도 좋다. 축구보다는 각양각색의 사람 구경이 목적이다. ‘아이, 저게 웬 난리들이야. (그런데) 어∼어, 슛, 슈∼ㅅ.’

공 가지고 하는 운동에 별 관심이 없는 나의 월드컵 관람기다.

이렇게 운동에 무심한 사람까지 끌어들이는 힘은 ‘운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축구도 월드컵 정도가 되면 그것은 ‘운동’이 아닌 ‘스포츠’가 된다. 여기서 엘리트 스포츠의 폐해 운운하는 것은 이미 방향이 빗나갔다. 이건 국가 단위 조직의 결속력을 다지고 국가 간 친선을 도모하며 관련산업의 발전을 꾀하는 축제다. 아무리 세계화 시대라 해도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 단위로 사고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이 달려갈 때 이공을 보고 있는 사람 기대와 욕망은 국경을 넘어 공과 함께 달린다. 스물 두 명 선수들의 꿈이나 감독의 희망보다 훨씬 큰 것은 90분 동안 그 공에서 눈을 떼지 않는 수십억 사람들의 벅찬 ‘기대’다. 라이프니츠의 단자(單子·monad)처럼 그 공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시선과 욕망을 담아 전 세계로 소통시킨다.

때로는 그 기대와 욕망의 소통보다 더 감동적인 광경이 있다. 6일 우루과이와의 경기 중 프랑스팀의 스트라이커인 티에리 앙리 선수의 태클이 상대선수의 발목을 치자 펠리페 라모스 주심은 레드카드를 뽑아들었다. 양 팀의 선수와 감독, 관중들까지 당황했지만 주심은 단호했고 모두 깨끗이 승복했다.

사각형 안의 둥근 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김형찬 문화부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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