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에이즈 공포

  • 입력 2002년 6월 8일 23시 13분


▷국내 에이즈 환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도 경각심은 오히려 둔해진 것 같다. 외국에서도 ‘에이즈 예방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관심’이라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 것을 보면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현상은 아닌 듯하다. ‘설마 내가 걸릴 리 없겠지’ 하는 방심과 함께 에이즈 치료약 개발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 등이 무관심을 부르는 요인이다. 지난해 국내에는 333명의 에이즈 감염자가 새로 확인돼 전체 숫자가 1600명을 넘어섰다. 연간 증가세가 30%에 가깝다는 통계지만 실제 감염자는 공식 수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대 여성감염자가 윤락 행위를 통해 수백명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환자가 여러 지방 도시를 옮겨 다니며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지자 해당 보건소에는 인상 착의 등을 묻는 남성들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보건당국은 감염자를 6개월에 한번씩 만나 면담과 검사를 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 환자는 소재 파악조차 안되어 있었다. 다른 에이즈 환자에 대한 관리는 잘 되고 있는 것인지 공포가 엄습한다. 또한 이 여성과 관계를 가진 남성 상당수가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이즈 환자에 대한 관리는 결코 쉽지 않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지만 이 방법은 필연적으로 인권 침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에이즈 환자들은 육체적 고통이나 경제적 궁핍보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에이즈 감염 사실이 확인되면 십중팔구 가정과 직장에서 쫓겨나고 이들을 받아주겠다는 곳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마음 편히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급선무이지만 우리 여건은 크게 미흡하다.

▷이번에 에이즈 환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보건당국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당국이 환자에 대한 ‘감시’나 ‘감독’의 고삐를 더욱 조이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다. 에이즈 대책은 가급적 환자 본인의 입장에서 접근할수록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유엔이 에이즈 환자의 인권 보장 및 차별 철폐를 각 국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환자들을 궁극적으로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환자를 고립시킬수록 해결은 어려워진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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