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여성계 원로 이우정씨 별세

  • 입력 2002년 5월 30일 18시 37분


▼민주화-여성운동 이끈 ‘재야代母’▼

30일 타계한 민주당 이우정(李愚貞) 상임고문은 삶 자체가 한국의 여성운동사였다.

고인의 조부는 ‘자유종’을 쓴 신소설의 개척자 이해조. ‘가문’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자란 고인은 경기여고 재학 시절 기독교를 접하고 그 뒤 해방신학을 공부하면서 사회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된다.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신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고인은 박정희(朴正熙) 정권이 3선개헌을 추진하던 70년 4월 결국 교수직을 내던졌다.

평화시장 뒷골목 ‘삼일사’라는 피복공장에서 어린 여공들의 참상을 본 뒤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인은 기생관광 근절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관계자가 “외화를 벌어들여야 한다. 기생관광도 애국이다”고 말하자 그 자리에서 “그렇게 애국적인 일이면 선생 딸부터 관광기생 만들라”고 면박한 것은 유명한 일화.

고인은 76년 서울여대 교수로 재직 중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3·1민주구국선언’을 낭독한 것 때문에 기소돼 재판을 받으면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처음 만난다. 86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을 창설, 재야의 대모(代母)로서 ‘권인숙 성고문사건’을 파헤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고인은 70세의 나이로 정치권에 입문, 14대 국회에서 여성특별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고 타계하기 직전까지도 민주화보상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생전에 “정치 바깥에서 정치를 욕할 게 아니라 정치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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