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영/院구성이 흥정대상?

  • 입력 2002년 5월 22일 18시 47분


우리 정치를 보노라면 본질은 놓치고 주변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인상이 들 때가 많다. 최근 16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문제가 또다시 정당간 정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단언컨대 이 문제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것은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 만약 절차규정에 미흡한 점이 있으면 원내총무들이 모여 협의할 수 있다. 그 경우에도 중요한 것은 어느 당이 의장과 부의장을 맡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국회의 위상과 자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인물로 의장단을 구성하느냐가 문제의 본질임을 각 당은 명심해야 한다.

▼또다시 정치협상 제물로▼

국회법에 따르면 전반기 의장단의 임기 만료일 5일 전까지 후반기 의장단을 선출하여 원 구성을 하도록 되어 있다. 현 이만섭 의장의 임기가 5월 29일까지이니 각 당은 25일까지는 새 지도부를 선출해 원 구성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자민련 의원을 빼 가는 상황에서는 원 구성 협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6월 13일 지방선거 이후나 8월 재보선 이후에야 원 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는 여야가 원 구성 자체를 정치적 협상의 제물로 삼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왔다. 이것은 하루 빨리 타파되어야 할 후진적 정치행태다. 물론 민주화 이전에는 이 문제가 국회운영에서 최소한의 민주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야당의 정치적 투쟁도구가 될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예컨대 부정과 불법이 난무했던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신민당은 원 구성을 지연시키면서 선거부정조사특위와 정치관계법 개정특위의 구성을 여당인 공화당으로부터 약속받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화 이후에는 이러한 최소한의 명분조차 사라졌다. 그런데도 원 구성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악습은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민주화운동 세력이 집권한 이후인 제15대 및 제16대 국회에서도 이 점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현재 각 당은 당리당략과 상황적 편의에 따라 국회법의 원 구성 조항을 의무조항으로 보기도 하고 훈시조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의무조항으로 보아야 한다. 역대 국회에서 각 당이 온갖 구실로 원 구성을 지연시키던 악습을 시정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이 조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 구성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려는 민주당의 입장은 이러한 의무조항을 어기는 것으로 법을 만드는 공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한편 국회법은 의장단을 선출하는 구체적 방식까지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각 당이 협의하여 좋은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 이제까지 국회의장, 부의장, 상임위원회장 등은 여당의 대통령이나 야당의 총재가 지명한 사람이 형식상의 표결을 거쳐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다 보니 국회가 대통령이나 정당 총재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국회의 위상이 실추되는 수가 많았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변화의 출발점은 대통령이나 총재의 의중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 자체의 위상과 자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의원들로 의장단을 구성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 점에서 16대 국회 전반기에 의장의 당적 이탈을 제도화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의장이 재임기간 중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국회를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의장 자유투표로 선출을▼

이제 남은 문제는 이러한 의장을 어떻게 뽑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여당이 맡느냐 다수당이 맡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국회의 권위를 향상시켜 명실상부하게 3권 분립을 실현할 수 있는 인물로 의장단을 구성하느냐가 문제의 본질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원 개개인들의 자유투표로 의장을 선출하는 것이 옳다.

마침 이만섭 의장이 이 방안을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이 안을 통해 이 의장이 재선을 바라고 있다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내막이야 어떻든 이 방안은 국회위상 강화를 위해 수용할 만한 것이다. 이 의장이 본인은 출마하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이 제안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자유투표 안에 대해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원칙적 찬성을, 그리고 민주당은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모든 당이 당리당략을 떠나 이 안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의장단 구성의 관례로 굳어졌으면 좋겠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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