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조병인/현금지급기에 지문장치 부착을

  • 입력 2002년 5월 20일 02시 12분


얼마 전 부녀자나 취객 등을 납치해 현금과 신용카드를 빼앗고 상대를 살해하여 암매장하거나 불태워버리는 끔찍한 범죄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국민을 불안케 만들었다. 범행 수법이 더 없이 잔혹할 뿐만 아니라 둘러대는 변명마저 천연덕스럽기가 이를 데 없다.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카드대금을 갚기 위해 할 수 없이 현금과 신용카드를 빼앗고 상대를 죽였다는 것이고 이에 언론은 카드 회사들의 무분별한 카드발급 행태를 연쇄적 강력 범죄의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은 사형선고를 우려해 본능적으로 둘러댄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선 범인들이 정말로 카드 빚을 갚을 생각이었다면 범행을 반복하는 동안 다만 얼마라도 카드 빚을 갚았어야 한다. 하지만 강탈한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용의자 가운데 검거 전에 카드 빚을 단 1원이라도 갚은 사례가 있는가. 두 번째로 신용카드를 만들어준 것이 화근이었다면 처음부터 카드를 만들 수 없었으면 범행도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해야 한다. 하지만 카드가 없었다면 범행 시점이 앞당겨졌을 가능성은 느껴져도 범행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피의자 전원이 근면 절약하는 습성보다는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과 방탕 생활에만 관심이 있던 행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범인들은 카드 빚이 연체되고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고 단지 자신들의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토록 끔찍한 강도와 살인을 저질렀을 뿐이다.

신용카드를 겨냥한 강력사건이 이어지는 진정한 이유는 신용카드와 비밀번호만 손에 넣으면 누구나 현금을 가질 수 있게 된 환경적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모방형 카드범죄가 늘어나는 측면도 있다. 신용카드가 ‘외상거래’를 부추겨서 신용카드를 노린 강력 범죄가 꼬리를 무는 것일 수도 있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대금 결제를 연체하거나 혹은 신용불량자가 남의 카드를 훔치거나 습득 혹은 강제로 빼앗는 강력범죄의 배후에는 신용카드가 잠재적 외상심리를 자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강력 범죄를 막기 위해 카드제도를 없앨 수는 없을 것이며, 현금인출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사용한도액을 크게 낮추는 방안도 확실한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신용카드를 노린 강력 범죄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잠재적 범죄자들이 신용카드를 범행의 표적으로 삼는 결정적 이유는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으로부터 우리는 ‘만약 어떤 형태로든 카드를 사용한 사람의 흔적을 남기도록 한다면 감히 신용카드를 빼앗아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신용카드를 노린 강력 범죄를 막으려면 영국의 일부 도시에서처럼 카드사용시 작성되는 매출전표에 반드시 카드사용자의 지문을 남기도록 만드는 조치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현금지급기마다 지문기록 장치를 부착해 기계사용자의 흔적이 남도록 하면 잠재적 범죄자들이 느끼는 신용카드의 ‘매력’이 사라져 모두가 우려하는 강력 범죄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조병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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