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이리에 아키라/´독불장군 시대´로 가는가

  • 입력 2002년 5월 8일 18시 25분


얼마 전부터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외교는 단독행동주의로 일컬어져 왔다. 유엔을 중시하지 않고, 다른 나라와의 협조보다는 자국 판단으로 행동하고, 국제협정에서 일방적으로 이탈하거나 자국 이익에 맞지 않는 협약에는 처음부터 참가하지 않았다.

그런 경향은 지난해 ‘9·11 테러’ 직후 다소 고쳐져 국제테러에 다른 나라와 공동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곧 단독주의로 회귀한 경향이 있다.

요즘 국제간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동문제나 철강수입제한 등의 정책만 봐도 그렇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자국중심적인 행동에 대해 미국 내외에서 비판론이 강해지고 있다.

▼美 이 日 등 국제여론 무시▼

그러나 최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단독행동주의는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적 조류가 돼버렸다. 팔레스타인 분쟁에서도 이스라엘 정부나 군부는 유엔이나 국제여론을 무시했다. 유엔조사단의 입국을 거부하고 해산을 촉구한 이스라엘의 태도는 자국 이익을 위해서는 제3자의 의향은 상관없다는 단독주의의 단적인 사례다.

또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배외주의를 표방하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 당수가 선전한 것도 같은 조류다. 그와 그의 정당은 국가를 넘는 유럽통합을 배제하고 프랑스 내에서의 외국인을 배척한다.

특히 세계화에 반감이 강하고 사람이나 상품의 교류에 적대적이다. 만약 르펜 당수가 정권을 잡았다면 미국보다 한술 더 뜬 단독행동주의로 치달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이나 프랑스와 정도는 다르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돌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도 단독주의적 태도다.

한국 중국의 입장이나 역사의식을 무시하고 국내 정치사정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일본도 국제여론을 경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이 자국 중심적이 되어 다른 나라의 반응에 신경을 쓰지 않거나 국제사회 전체의 이해를 경시하게 되면 역사의 바늘이 ‘세계 무질서의 시대’로 되돌아갈 우려가 있다.

과거 세계에 질서다운 질서는 없었다. 질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국제법이나 국제조직이 창설된 이후로 유럽은 17세기, 다른 지역은 더 늦었다. 또 국제질서가 하나로 존재하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이며 그 개념이 받아들여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였다.

반면 자국이익 중심주의, 단독행동주의는 훨씬 역사가 길다. 자국중심주의가 국가간 긴장을 높여 분쟁을 일으키기 쉽다는 반성에서 유엔 등 국제조직이 만들어진 것.

현대 국제관계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는 각국이 국가주권이나 국익을 중시하는 무질서 상태로 되돌아갈 것인지, 국제법이나 국제조직 등을 통해 만들어진 질서를 지켜나갈 것인지 하는 것이다.

전자는 각국이 최근의 이스라엘과 같은 자국 중심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팔레스타인에 새 국가가 건설된다고 해도 그 국가 역시 이스라엘처럼 단독주의적 자세를 취할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이나 그 밖의 나라가 공통의 이해는 제쳐두고 자국 국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그런 세계는 상상만으로도 살벌하다. 200개에 가까운 나라가 각각 단독행동에 나선다면 국제 긴장이 높아질 뿐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가능한 한 많은 나라가 국제협조주의에 참여해야 한다. 이웃나라와 정치 경제 문화교류 등을 통해 운명을 공유해 나간다. 그런 운명공동체 의식 없이는 국제사회의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자국이익만 추구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후 열린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소에서 몇몇 독일 지도자는 ‘인류에 대한 범죄’로 재판 받았다. 인류, 휴머니티란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나치독일이 유대인이나 다른 민족을 말살하려한 것은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에 해당한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특정 인종이나 국가에 그치지 않고 인류 전체를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휴머니티의 개념은 소멸하고 만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주권국가나 프랑스의 우익정당, 일본의 일부 우익세력과 같은 배타적인 단체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세계에는 한사람 한사람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 그 모든 사람이 귀중한 존재인 것이다.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세계인류의 연대감이다.

단독행동주의가 특히 두드러지고 있는 현실속에서 휴머니티의 개념을 새삼 확인하고 싶다.

이리에 아키라 美하버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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