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판석/李후보 국정 해법 제시를

  • 입력 2002년 5월 8일 18시 25분


여당에서는 이미 국민경선을 통해 노무현씨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한나라당에서도 이회창씨가 마지막 경선 결과에 상관없이 사실상 대통령 후보로 확정됨으로써 여야 모두에서 대통령 후보가 부상한 셈이다. 따라서 이젠 당원을 상대로 한 당내 정치에서 벗어나 국민을 향한 치열한 정책대결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비교적 준비기간이 길었던 이회창 후보의 정책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미 대통령 선거에 나선 경력이 있는 데다 당 총재까지 역임했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가 가져야 할 각종 정책이 잘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 보통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거의 없다. ‘노풍’이 위협적으로 부상하면서 한나라당이 위기감을 느꼈다면 그러한 위기를 초래한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만약 그러한 반성이 없다면 국민은 또다시 실망하게 될 것이다.

▼권력기관 개혁 소신 밝히길▼

이 후보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우선 의회정치 면에서 보자. 국회에 있으면서 당내 민주화나 의회정치를 활성화하지 못하고서는 앞으로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의회정치를 활성화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YS나 DJ의 경우 국회를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국회를 상대로 한 큰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후보라고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므로 국회를 국정의 중심에 자리잡게 하는 구체적 정책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앞으로는 누가 집권하든 여소야대 현상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고, 현 대통령제가 존속하는 한 임기의 절반을 넘기면 예외 없이 레임덕 현상이 초래될 것이므로 국회를 잘 활용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둘째,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시비가 번지면서 제왕적 총재라는 시비도 있었다. 그런 시비의 중심에 있었던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또 다른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이러한 세간의 우려가 억울하게 느껴진다면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국무위원 등과의 권력배분을 어떻게 할 것이며, 국정운영체제를 어떤 방식으로 혁신할 것인지에 대해 실현 가능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셋째, 이 후보는 세간의 사정을 고려해 청와대와 여러 권력기관들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소신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보는 이에 따라 관점은 다르겠지만, 누가 뭐라 하든 정부당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사태를 처리하면서 많은 정부개혁 과제를 추진해왔다. 실제 그 과정에서 관리 기술상의 진전이 있었고, 그 결과는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행한 ‘세계 경쟁력보고서’에서도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잘한 것은 인정해주고 잘못한 것은 찾아서 바로잡아야 한다.

현정부에서 크게 진전되지 못한 것들 중의 하나가 민주화를 공고히 하는 문제다. 최근 범람하는 각종 스캔들만 보더라도 민주화의 과제가 얼마나 시급한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청와대와 권력기관들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먼저 밝혀야 할 것이다.

넷째, 이 후보는 폐쇄적인 보수주의자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 후보는 그동안 보수노선을 지향해왔다. 그러나 보수노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현실에 안주해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를 개혁해야 할 부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어야 한다. 무엇이 진정한 보수인지 정책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주지 못하면 고답적인 보수주의자라는 이미지만 더욱 고착될 것이다.

▼폐쇄적 보수주의 벗어야▼

마지막으로, 대통령 후보들에게 공히 부탁하고 싶은 말은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되면 무슨 일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대통령 프로젝트’를 잘 준비하라는 것이다. 대통령 프로젝트는 미사여구로 가득한 정강정책이 아니다. 현재의 5년 단임제가 지속된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 국정 비전은 무엇이며 처음 1년부터 마지막 5년까지 무슨 일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연도별 일정표를 만들고 실천방법까지를 포함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 정도는 마련해야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선거정치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이제는 출신 배경이니 색깔이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지 말고 진정 정책으로 대결하는 선거 축제가 펼쳐지기를 바란다.

김판석 연세대 교수·행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