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엄상익/˝한국 절대 가지 마라˝

  • 입력 2002년 4월 22일 18시 24분


태국의 주요 유력 신문들이 “한국 절대 가지 마라”고 보도했다. 태국 여행자가 우리나라 공항에서 모멸을 당했다는 것이다. 태국의 내무장관은 보복까지 경고했다고 한다. 국제적 망신이다. 그들의 격앙된 감정 표현은 그동안 쌓인 우리의 미숙한 처신 탓일 수 있다.

현대는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오대양 육대주를 흘러 다닌다. 그것은 거대한 인간 교환이다. 국가도 이제는 경영이고, 친절도 상품이다. 대접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그 많은 나라 중 그래도 한국을 찾아주는 관광객에게 우리 국민 모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고압적인 출입국 공무원▼

모멸적인 취급을 당했다는 태국인 나파씨는 방송국 간부다. 논리와 의식을 가진 그는 우리 공무원의 무례를 고발한다. 항의하는 그에게 우리 공무원이 때릴 듯한 태도까지 취했다고 한다. 세상일은 모두가 마음과 마음끼리 주고받는 메아리다. 미운 마음을 보내면 미운 마음으로 응답이 오고, 어진 마음으로 치면 어진 마음으로 울려온다. 열린 사회에서 외국인의 솔직한 감정 표현과 평가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 평가는 공무원의 미숙한 자세와 실력 부족을 말한다.

출입국 공무원은 친절한 한국의 첫 안내자여야 한다. 민간 항공사 직원과 친절의 질과 양이 달라야 할 이유도 없다. 물론 공무원이라 법적인 의무와 권한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불법의 문제도 얼마든지 세련되게 처리할 수 있다.

필자는 가방 속에 약들을 넣고 유럽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파리에서 공항공무원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의 가방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예약한 호텔 주소를 알려주면 정확히 나중에 가방을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런 일이 제네바에서도 일어났다. 나중에야 공항당국의 세련된 조사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뜯었다가 감쪽같이 붙여놓은 약상자를 보고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공무원이 조사권한을 매끈하게 실행한 것이었다.

이 사건에서 다음으로 아쉬운 점은 잘못의 시인이 없다는 것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은 그 태국인에게 모욕적인 행동을 한 게 전혀 없다고 한다. 잘못의 인정은 또 하나의 용기요 명예다. 현장에서 공손하게 사과했으면 이런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힘 있는 나라에는 잘 하고 가난한 나라는 쉽게 생각하는 이중잣대의 교만이 우리에게 있지 않은 지 살펴야 한다. 변호사 일을 하다보면 나라에 따라 그 나라 사람에 대한 공무원들의 취급 방식이 다른 걸 종종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들이 정작 마음 아파하는 것은 차별대우를 하는 우리의 교만이다.

얼마 전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서였다. 인도인 가족 다섯 명이 지친 얼굴로 심사대 앞에 서 있었다. 취업을 위해 온 가족이 고국을 떠나온 것 같았다. 등에 갓난아이를 업고 양손에 아이들 손을 잡은 아이 엄마는 겁먹은 눈으로 이민국 직원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초라한 그들 가족을 대하는 캐나다 공무원의 눈을 살펴보았다. 불법체류의 혐의를 포착하려는 위압적인 눈인지, 동정하는 배려의 눈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법체류 혐의와 그들의 무식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담당 공무원은 담담하게 규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또 그의 눈은 사정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따뜻한 눈빛이었다. 언어가 안 통해도 그런 눈빛에서는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들어갈 때면 그 나라 이민국 공무원부터 살핀다. 그들의 근무자세나 친절한 말 한 마디에 그 나라의 이미지가 결정된다. 구겨진 제복에 옆 동료와 잡담하는 공무원을 보고 그 나라의 기강해이를 짐작한 적도 있다. 높은 단 위에서 근엄하게 내 여권에 도장을 찍는 교만한 태도의 관리를 올려다보며 수모를 느끼기도 했다.

▼친절하게 입국자 섬겨야▼

귀국할 때 우리 공항 공무원들을 보면 아직은 무뚝뚝한 표정이다. “어서오십시오”라는 자연스러운 인사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외국 공항의 공무원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붙인다. “그동안 즐거웠느냐” “며칠 동안 뭘 하면서 지낼 거냐”는 등 친구같이 물어보면서 그 속에서 빼낼 정보를 다 파악한다.

우리 공무원들도 봉사하는 자세로 입국자들을 섬겼으면 좋겠다.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을 위압적으로 심사하는 태도여서는 안 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진다.

인스턴트 제품 같은 일시성의 시대에 한번 이미지를 훼손당하면 만회가 어렵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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