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 민/포르노

  • 입력 2002년 4월 21일 18시 28분


문학과 미술 특히 영화에 있어서 ‘포르노’는 정치나 이데올로기 문제 못지 않게 지속적으로 법적규제의 대상이 되어왔다. 요즘은 영화보다도 인터넷상의 포르노사이트가 더 문제시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원래 ‘매춘에 관한 이야기’를 뜻하는 ‘포르노그라피’의 준말 ‘포르노’는 제대로 정의를 내리기가 무척 힘들다. 시대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성기와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글이나 이미지를 가리키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하기 짝이 없다.

▷‘포르노’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외설(猥褻)’ ‘음란(淫亂)’ 정도인데 외설이 일본식 표현이라 해서 현행법에서는 음란으로 표기한다. 음란은 성욕을 자극하거나 흥분 또는 만족하게 하는 내용 가운데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을 해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성기의 노출, 적나라한 성행위, 강간, 변태적 성행위, 아동추행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도 ‘변태적 성행위’ 같은 표현은 매우 포괄적이고 뜻이 지극히 애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어떤 암묵적 기준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하나는 ‘수치심의 유발’이라는 기준이다. 성행위는 숨겨져야 하지 노골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섹스는 그 자체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노출되면 부끄럽다. ‘성적 선택의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와 ‘수치심’이 정면으로 부닥치는 대목이다. 그러나 ‘수치심’이란 주관적으로 느끼는 정서적 반응이기 때문에 이것이 과연 합리적인 기준이 될 수 있을까하는 것도 의문이다. 다른 하나의 기준은 나이와의 관계로 포르노 또는 음란물이 ‘성인들의 문화’라는 제한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인들의 문화와 청소년의 문화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섹스’를 허용하느냐 안하느냐다. 청소년에게는 성적 행위의 자유가 규범적으로, 법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 표현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및 영상물에 적용되는 등급제 심의나 청소년보호법 등은 나이 기준으로 ‘음란’의 허용범위를 다스리려 한다. 그러나 일정한 연령대라는 점 빼고는 ‘청소년기’가 과연 무엇인지도 의문이다.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범주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문제에 관해 보다 명확한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더 이상 두루뭉술한 개념이나 기준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수많은 논란이 예상되지만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최 민 객원논설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chmin@knua.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