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승호/적과의 동침

  • 입력 2002년 4월 5일 18시 32분


생명보험업계 1, 2위를 다투는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이 이달초 손을 잡았다.

이들 회사는 두 회사의 채권관리 조직을 떼내 A&D신용정보를 설립, 연체 및 부실채권의 관리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양사는 이에 앞서 98년말에도 부동산신탁전문회사인 ‘생보부동산신탁’을 공동으로 세워 쏠쏠하게 재미를 봤다고 한다.

양사는 핵심사업인 보험영업에서는 경쟁하되, 나머지 기능은 가급적 분사해 몸집을 가볍게 만든다는 전략이다.

업계 선두주자끼리 ‘적과의 동침’을 꾀하는 국내외 사례는 하나둘이 아니다.

미국에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합작해 2000년말 설립한 코비신트(Covisint)라는 온라인기업이 있다.

경쟁사들이 협력해 만든 이 회사는 자재의 공동구입 및 재고관리를 맡고 있다. 이들 제조업체가 자재관리를 코비신트에 맡긴 후 자재비 절감률이 매출액의 7%에 이르렀다. 자동차 한 대 팔면 마진율이 2.5%다. 차를 만들어 파는 것보다 공동구매를 해서 얻는 이익이 훨씬 컸다는 얘기다. 프랑스의 르노 및 푸조시트로앵, 일본의 닛산자동차도 차례로 코비신트에 동참했으며 영업망은 미주 유럽 일본을 아우른다.

국내에서도 오래 전부터 완성차 업체의 부품공용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많았다. 그렇지만 협력이 원활치 않아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그런 가운데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국제시장에서의 부품구매 얘기가 오가고 있다. 이 경우 1만6000여개의 국내 부품업체 중 몇 개나 살아남을까? 현재 국제시장에 부품을 수출할 수 있는 품질인증(QS)마크를 획득한 곳은 20개 남짓이다.

기업 활동에서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치열하게 싸우는 한편으로 필요하면 협력하면서 제 살 길을 찾는 것이다. 국제적 규모에서 경쟁해야 하는 새로운 경영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다.

여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는 도태된다. 어디 기업만 그럴까. 로마도, 덩치 큰 공룡도, 현존하는 국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허승호기자 경제부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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