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영균/플라스틱머니

  • 입력 2002년 3월 27일 18시 11분


얼마 전까지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잘나간다는 음식점에선 신용카드를 받지 않았다. 아예 ‘신용카드 사절’이라고 써붙이고 현금만을 내라고 강요하다시피 했다. 현금이 한푼도 없이 카드만 넣고 다니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였다. 요즘은 그런 업소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신용카드를 거부하면 세무조사를 받게 된다니 더욱 그렇다. 오히려 카드를 내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다. 가히 신용카드가 돈을 대신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플라스틱머니’라고 부른다.

▷신용카드가 없으면 살기 어렵다는 미국은 ‘신용카드의 나라’다. 6·25전쟁이 터진 1950년 미국 뉴욕의 한 식당에서 시카고의 사업가 프랜시스 자비에르 맥나마라는 식사를 끝낸 후 망신을 당했다. 돈을 내려는 데 지갑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돈 없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그는 친구와 함께 ‘다이너스클럽(diner’s club)’을 만들었다. 회원들은 계약한 식당에서 식사한 후 회원증을 보이고 나중에 돈을 계산하면 되었다. 다이너스카드를 시초로 신용카드회사는 유행처럼 만들어져 세계 곳곳에 지사를 갖춘 다국적 기업이 됐다.

▷우리나라에선 1969년 신세계백화점카드가 처음 등장한 이후 이젠 종류도 다양해졌다. 선불카드 직불카드 전자화폐에다 컴퓨터칩을 넣은 스마트카드까지 등장했다. 기존 신용카드 뒷면의 마그네틱 띠 대신 손톱 만한 칩을 넣어 신용 직불 전자화폐 교통 의료정보 신분증 등 여러 기능을 단 한 장에 모은 카드이다. 어떤 사람은 다양한 플라스틱머니가 출현함에 따라 ‘무현금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발급된 신용카드는 약 8400만장. 성인 1명당 4장가량의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셈이다.

▷신용카드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외상’ 기능이다. 당장 돈이 없어도 일단 쓰고 나서 갚으면 된다. 요즘은 현금서비스라고 해서 아예 대출까지 해 준다. 게다가 정부가 신용카드 복권제도까지 만들어 재수 좋으면 거액의 당첨금까지 준다니 당첨률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요행을 바라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신용카드는 잘 써야 본전이다. 잘 알고 쓰면 경제적, 시간적으로 상당히 편리하지만 잘못 쓰면 과소비와 과다한 빚으로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대학생들이 카드빚을 갚기 위해 은행강도짓을 하는가 하면 미성년자에게 카드를 내줬던 신용카드회사들이 영업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부자가 되려면 신용카드를 버려야 한다’는 세계적인 갑부 워런 버핏의 충고가 빈말은 아닌 듯하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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