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중국 대중문화 들여다보기 '중국,축제인가 혼돈인가'

  • 입력 2002년 3월 15일 18시 30분


중국 관련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가 쓰거나 번역한 심각한 책으로부터 초심자가 쓴 여행기나 견문록까지 온갖 분야의 책들이 앞 다퉈 나올 만큼 중국은 이제 우리의 비상한 관심 대상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중국의 당대 문화현상을 다룬 책이 드물다.

왜일까? 중국의 당대 문화는 아무래도 우리보다 유행이 늦어서 시의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억측 때문일까? 아니면 중국의 문화연구의 이론 경향이 우리와 달라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일까? 그러나 2000년대 벽두부터 중국에 불어닥친 ‘한류(韓流)’ 열풍에 스스로도 놀라워하고 있는 이즈음 우리가 중국의 당대 문화현상에 대해 무지해도 될까?

이 책은 최근 흥기하고 있는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중국 당대 문화를 냉철히 분석한 중국 문화연구 방면의 수작(秀作)이다. 저자는 이 책의 모두(冒頭)에서 ‘문화지도(文化地圖)’라는 개념을 통해 중국 당대문화에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문화지도란 우리의 생활 방식과 행위 방식을 지배하는 코드로서 그것은 이데올로기, 가치관, 우상, 텍스트 등으로 구성된다.

저자의 진단에 의하면 과거의 중국은 시대 정신이 선명했으나 개혁 개방 이후 문화 충돌의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하의 새로운 문화환경으로 진입하면서 문화지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화지도의 모호화 현상은 80년대의 두 가지 경향에 의해 촉발되는데, 그 하나는 상품화 시대의 시장이 추동하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 개방 과정에서 주체의식을 획득한 대중이 요구하는 오락형식이다. 자본주의화 이후 대외 문화교류와 중국 국내 문화시장이 형성됨에 따라 전통적 문화생산 방식, 즉 국가가 지배하던 문화생산 방식이 와해된다. 아울러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의 유입은 주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엘리트 지식인의 정체성을 마비시켜 대중문화를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끌어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저자는 상업화된 대중문화를 ‘판타지 문화’라는 독특한 용어로 규정한다. 저자에 의하면 판타지 문화는 산업사회의 표징으로서 그것은 허구적 방식으로 진실하지 않은 세계를 제공해 인간의 소유 욕망과 말초적 성향을 유발한다. 저자는 판타지 문화의 실례로 TV, 광고, 스타시스템 등을 갖가지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지식인이 대중매체에 저항하는 논리를 견지하면서도 결국 대중매체에 의지하거나 함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백한다. 그러나 말미에서 지식인의 비판 기능이 궁극적으로 빛을 발할 것이라는 소망을 피력하기도 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한 가지는 중국 당대 문화의 지형도를 잘 그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국 당대 문화의 현상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그런 이해로부터 ‘한류’의 장래를 점치고 전략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엘리트 지식인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대중문화를 폄하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그 이면에는 테리 이글턴, 프레드릭 제임슨 등 제1세계 좌파 지식인의 이른바 ‘지도비평(指導批評)’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들의 지도비평 역시 제1세계 지식인의 제3세계 지식인에 대한 권력 행사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 이책의 이론적 한계라 할 것이다.

정 재 서 이화여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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