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말한다]'벤처 뒤집기' 펴낸 한상복씨

  • 입력 2002년 3월 15일 17시 16분


당신은 ‘IT’의 ‘I’자도 모른다. ‘법인’의 ‘법’자도 모른다. ‘코스닥’의 ‘코’자도 모른다.

그래도 당신은 벤처기업을 할 수 있다.

왜? 한국이니까.

1990년대 후반, 10여년 째 호황을 누리는 미국을 부러워하며 우리나라는 벤처 육성론을 들먹였다. 직장인과 대학생 심지어는 고등학생까지 벤처를 하겠다고 나섰다. 눈먼 투자자들은 ‘벤처’자가 붙은 기업에 돈을 쏟아 부었다.

냄비가 식은 요즘, 수십 배씩 투자를 유치했다는 벤처기업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기술’과 ‘혁신’이라는 말에 현혹되던 투자자들은 냉철하게 시장을 분석하고 대상기업의 능력을 수치화해 평가하기 시작했다. 혹자는 ‘거품이 빠졌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언젠가 세상이 다시 바뀌겠지’라는 대박의 꿈을 꾸는 당신은 오늘도 월세 50만원짜리 사무실에서 사업계획서를 쓰고 있다. 그리고, 수 많은 ‘하이에나’들이 눈먼 당신의 돈을 빼먹기 위해 옆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다.

‘벤처 뒤집기’를 낸 한상복씨(비즈하이 이사)는 “있지도 않은 금맥을 캐기 위해 청바지 곡괭이 수레 값으로 밑천을 탕진하는 형국이 국내 벤처시장에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모델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벤처기업 사장에게는 시중에 나와 있는 기술을 적절히 조합해 마치 새 기술인 것처럼 꾸며주는 ‘사업모델 디자인 서비스’가 기다리고 있다. 사업모델이 완성된 뒤에도 투자자를 찾지 못할 경우 ‘투자자 연계 서비스’를 부르면 된다. 일단 회사를 만들었는데 매출이 오르지 않아 투자자들에게 얼굴이 서지 않는 사업주는 ‘스리쿠션 매출 브로커’를 찾으면 된다. 이들은 실제 돈이 오가지 않는 가운데 세금계산서만 교환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부풀리거나 허위 매출을 올려준다.

이런 ‘거간꾼’들이 고객으로 삼는 업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장사해서 돈 버는 데는 관심이 없는 ‘벤처기업’이라는 것.

“투자유치는 곧 회사의 수입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한씨는 2000년 8년 동안 일했던 한 경제신문을 그만두고 벤처 컨설팅회사인 현재의 ‘비즈하이’에 참여했다. 정보통신 담당기자로, 이제는 컨설턴트로 수 많은 벤처기업을 체험해 온 그가 지적하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제금융체제(IMF)는 방만하던 대기업의 체질을 선진국형으로 개선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 막 태어나기 시작한 벤처기업들은 대기업이 했던 시행착오를 처음부터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부족한 마케팅 능력에 동호회 수준의 조직관리. 막상 제품을 만들어 놓고도 마케팅을 할 줄 모르거나, 몇 명 안 되는 조직 내에서 파벌을 만들고, 막상 투자를 받은 뒤에는 밥그릇 싸움으로 의가 상해 불과 몇 달 못 가 사실상 사업을 포기하는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씨는 이 책에 일부러 쓴 소리만 골라 썼지만 벤처기업에 대한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그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가 벤처기업을 통해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며 “잠시 과도기를 거치고 나면 당초 예상대로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과도기 뒤에는? 그는 “‘대박’의 꿈을 접고, 정직하게 사업의 ABC를 밟아야만 기업이 되는 분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벤처 뒤집기’가 자칫 ‘사기’로 빠질 수 있는 ‘사업’을 지탱시켜주는 지침서가 됐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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