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이갑수/公기업 파업 다양한 시각 조명을…

  • 입력 2002년 3월 8일 18시 19분


다사다난이라는 말은 흔히 연말경 지나온 한해를 회고하면서 쓰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2주일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니 어쩌면 그리도 큰일들이 압축적으로 많이 벌어졌는지,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가불이라도 해야 할 듯싶다.

미국의 빗나간 애국심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후끈 열받게 만든 동계올림픽의 ‘도둑맞은 금메달’ 사건이 끝나자 국내의 일이 사람들의 눈을 붙들어 매었다. 대충 꼽아보아도 ‘철도, 가스, 발전 파업 비상’ ‘반민족 행위자 명단 발표’ ‘불법 선거자금 고백’ ‘서울 고교 전학대란’ 등등이다.

공기업의 민영화를 두고 벌어진 이번 파업을 보도한 지면에서는 ‘불법’ ‘엄중 대처’라는 말이 유독 강조되는 느낌이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정부 측의 입장만 있고, 근로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간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개혁을 외쳤지만 얼마 전 보도를 보면 정부의 장 차관 자리는 오히려 늘었다고 하지 않는가. 당사자들의 입장을 짚어보고 사태를 불러일으킨 원인을 따져보는 심층적인 보도가 아쉬웠다. 한편 이런 파업이 있으면 으레 사회면은 출근길에 발을 굴리는 시민들의 모습을 싣는다. 물론 당장 눈에 보이는 불편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이제 전동차야 제대로 굴러가지만 파업으로 인한 더 큰 후유증은 사실 산업계가 지금 감당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짚어내어 서로가 자성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세계 여성의 날(3월8일)을 앞두고 한국 여성의 국제적 지위를 되돌아본 기사(3월7일자 A8면)가 눈에 띈다. 사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등장한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여성의 세기가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사는 예전에도 어디서 본 듯한 평범한 내용 같아 참 공허하다는 느낌이었다. 주부의 가사노동, 호주제 문제 등 우리 여성이 처한 고단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시각이 아쉬웠다.

‘민족정기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반민족행위자’ 70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한 지면은 ‘친일명단 일부 인사 포함, 객관성 적격성 논란’(3월1일자 A1·2면) ‘친일명단 공개반대 의견 묵살 당해’(3월2일자 A1·3·4면) 등인데, 이는 문제의 본질은 다루지 않고 곁가지로만 흐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반면 3·1절을 맞아 게재한 신용하 교수의 특별기고(3월1일자 A17면)는 봄이 시작되는 3·1절에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점검하기를 촉구하는 내용이어서 뜻깊었다.

한편 3월6일자 제2사회면(A30면)에 실린 ‘고려대학 중앙광장 완공’ 기사는 아래 부분의 고려대 광고와 어울려 면 전체가 마치 전면광고처럼 보여 혼란스러웠다. 고교 전학대란과 관련해서는 시리즈 ‘고교평준화 논란과 해법’(3월5일자 A21면)에서 평준화 문제의 본질을 잘 드러냈고, 이어 칼럼 ‘사립고부터 평준화 풀자’(3월7일자 A7면)에서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해 정책 당국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갑수 시인·출판사 ´궁리´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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