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살아있음이 곧 축복 '세계가 만일 100명의…'

  • 입력 2002년 3월 8일 17시 30분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케다 가요코 구성 C.더글러스 루미즈 영역 한성례 옮김/68쪽 6800원 국일미디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가 설레었나요? 밤에 눈을 감으며 괜찮은 하루였다고 느꼈나요? 선뜻 물론이죠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이 편지를 소개합니다. 읽고나면 주변이 조금 달라져 보일꺼에요.’

이 책의 첫 문장을 보고 이어질 내용이 낭만적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해다. 다음 문장은 뜻밖에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세계에는 63억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52명은 여자이고 48명이 남자다. 30명이 아이들이고 70명이 어른들이며 어른들 가운데 7명은 노인이다. 90명은 이성애자이고 10명이 동성애자다. 70명은 유색인종이고 30명이 백인이며 61명이 아시아 사람이고 13명이 아프리카 사람, 13명이 남북 아메리카 사람, 12명이 유럽사람, 나머지 1명은 남태평양 지역사람이다.

이 재미난 통계를 만들어낸 사람은 미국의 환경학자 도넬라 메도스. 환경문제를 다룬 명저 ‘성장의 한계’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세계가 만일 10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신문칼럼을 썼다. 단순한 통계치의 나열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가져다 주는 내용이어서 네티즌들이 퍼 담아 전 세계 인터넷의 바다로 옮겼다. 마침내 한 친구로부터 메일을 받은 일본인 이케다 가요코가 제목도 바꾸고 내용도 약간 첨삭해서 페이지마다 예쁜 그림들을 붙여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17명은 중국어를 말하고 9명은 영어를, 8명은 힌두어와 우르두어, 6명은 스페인어, 6명은 러시아어, 4명은 아랍어로 말하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이 마을’은 그러나 빈부격차 전쟁 인권침해 환경오염으로 신음한다.

‘20명은 영양실조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이고 15명은 비만입니다. 이 마을의 모든 부(富)중 6명이 59%를 가졌고 그들은 모두 미국 사람이며 74명이 39%를, 20명이 겨우 2%만을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75명은 먹을 양식을 비축해 놓았고 비와 이슬을 피할 집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25명은 그렇지 못합니다.’

‘17명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으며 14명은 글도 읽지 못합니다. 48명은 괴롭힘이나 체포 고문 죽음의 위협속에서 자신의 신념이나 양심에 따라 살지 못하고 있으며 80명은 공습이나 폭격 지뢰로 다치거나 무장단체의 강간 납치공포에 시달립니다.’

저자는 이 마을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당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 주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일들을 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에 옷을 걸쳤고 지붕이 있어 잠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세상 75%의 사람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 두분이 모두 살아 계시고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미국에서마저도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만약 고개를 들고 얼굴에 웃음을 띄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축복받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12월 발간 두달만에 116만부가 나가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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