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박상수/제품설명서 쉽고 상세하게 쓰자

  • 입력 2002년 2월 20일 18시 23분


한때 우리나라는 기술력에 비해 디자인의 질이 떨어져 국제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최근 집중적인 투자로 상품의 디자인 능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상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실정이다.

외국에서 나오는 제품의 카탈로그는 그 상품의 작동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품의 카탈로그에는 세계 최초, 최첨단, 카오스, 나노, 원적외선 등의 수식어가 붙지만 그 제품의 작동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별로 없다. 이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소비자의 권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믿고 만족할 수 있도록 하려면 광고나 카탈로그 문안을 쉬우면서 과학적인 용어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최근 언론에 많이 등장한 ‘전기분해를 이용한 무세제 세탁기’의 경우도 제품의 작동원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전혀 없다. 자료를 조금만 찾아보아도 세탁의 원리를 알 수 있는데, 회사 측에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 소홀한 것이 그 첫째 이유라고 생각한다.

세탁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때가 의류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때는 기름성분이기 때문에 물에 잘 녹지 않아 세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초음파의 경우 때와 섬유 사이의 간극을 자극해 때를 분리시키지만 제거된 때는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초음파가 중지되면 다시 옷에 달라붙는다. 일본의 산요전기가 2000년에 개발한 세탁기는 초음파를 이용해 일단 때를 분리한 다음 전기분해를 이용해 다시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전기분해수는 그 동안 수영장 물의 살균이나 정수장에서의 유기물질 제거에 이용되었다.

또한 2000년 미국 화학회에서 조지아대의 연구자들은 전기분해수가 살균효과가 있음을 발표했다. 전기분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산화제가 미생물의 세포막과 반응하는 것으로 추론했다.

전기분해 과정에서 활성산소가 만들어지며, 이 활성산소가 유기물질과 반응하면 유기물질에 수용성인 수산화기를 만들어주어 물에 잘 녹을 수 있도록 해 준다. 전기분해 과정에서는 또한 수소와 산소의 기포가 발생한다. 이 미세 기포는 때를 둘러싸고 물 속에 부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질이 있어 폐수처리 과정에서 이용되어 왔다. 같은 원리로 세탁과정에서도 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기분해수에 의한 세탁은 산화제와의 반응에 따른 때의 용해도 증가, 혹은 미세 기포에 의한 때의 분리 메커니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제품 설명에 포함해 준다면 소비자들이 원리도 제대로 모르면서 세탁기를 사용해야 하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제품에 대해 더 많은 신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제품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은 기술력과 디자인에 이어 우리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주는 다음 단계의 방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상수 서울보건대학 교수·의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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