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기독교적 신념

  • 입력 2002년 2월 20일 18시 14분


미국 역사에서 메이플라워를 타고 온 최초의 이주민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는 영국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다. 미국 헌법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지만 청교도 정신에 바탕을 둔 기독교 전통은 미국 사회 곳곳에 살아 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거나 법정에서 증인들이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할 때 반드시 성경에 손을 올려놓는다. 하느님과의 약속이라는 의미다. 미국에서 발행된 화폐에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글귀가 인쇄돼 있다.

▷민주당보다 공화당 쪽이 기독교와의 유대가 강하다.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인 기독교연합(Christian Coalition)은 공화당의 주요 지원 세력이다. 기독교연합은 공립학교에서 기도 시간을 부활하자고 주장하고 낙태와 동성애에 반대한다. 성경의 창조론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정도로 보수적인 인사들도 많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최근 기독교연합 총재직을 사임한 팻 로버트슨 목사에 뒤이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사실상 보수적인 기독교 교단의 지도자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교계 언론과 목사들이 한결같이 부시 대통령의 영도력을 ‘신의 섭리’로 찬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백악관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모니카 르윈스키에게 가끔 전화를 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그럴 때 텍사스 휴스턴에 사는 흑인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목사 두 명이 축도를 한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은 장엄한 예배의식처럼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의 친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영향을 받아 신앙심이 깊어지면서 40세 생일 때 술을 끊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을 만나본 교계 인사들은 “부시가 자기 신앙을 담대히 표출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베이징(北京)에 가면 종교의 자유에 관해 언급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이 문제가 논의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전쟁 준비 등에 대해서만 말했던 것과 달리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내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언급한다. 도라산역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폭력과 기아, 그리고 전쟁의 위협이 없는 곳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연설했다. 기독교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신념 같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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