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私조직 死조직

  • 입력 2002년 2월 18일 18시 06분


한국정치에서 연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지연 학연 혈연은 기본이고 이것이 얽히고 설킨 사조직의 역할도 크다. 바로 조직연(組織緣)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활동이 활발해지는 연구소 동우회 향우회 동창회 산악회 조기축구회 등이 이 같은 것들이다. 이들 사조직은 공식적인 정당조직을 통해 할 수 없는 일을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손쉽게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내놓고는 할 수 없는 떳떳하지 못한 일들을 은밀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누구든 정치판에 뛰어들거나 출마하려면 사조직을 만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우리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조직으로는 전두환(全斗煥)정권의 ‘하나회’, 노태우(盧泰愚)정권의 ‘월계수회’,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민주산악회’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조직은 나름대로 정권창출에 기여했고 선거 후에는 정권의 요직에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는 결국 우리 정치를 ‘끼리끼리’의 파당적 정치로 만드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사조직들이 불법선거운동을 벌이고 있어 중앙선관위가 정밀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특정후보의 사조직을 표방하다가 이미 고발된 사람도 있다. 올해는 특히 국민참여경선에 대비해 사조직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일반 국민을 상대로 은밀하게 선거운동을 하다가 여차하면 사조직을 바로 선거인단으로 투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인 것 같다. 어느 도 향우회는 두 대선예비후보를 놓고 분열조짐을 보이고 있고, 유력 후보를 향해 사조직끼리 충성경쟁을 벌이는 곳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사조직의 기승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우리 정치의 연줄주의를 심화시키고 부정부패를 양산하는 원인이 된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후보자가 사조직이나 기타 단체를 설립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선거 후 고생했다고 자리를 주다보면 인사의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능력도 없는 자가 주요한 직책을 맡음으로써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을 가져오고 만다. 당선된다 해도 뒤에 무슨 무슨 ‘게이트’로 곪아터질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사(私)조직이 자칫하면 후보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死)조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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