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24시]흔들리는 부장님⑤/휴일이 싫은 기러기 아빠

  • 입력 2002년 2월 18일 18시 03분


KTB네트워크 김모 팀장(40)은 얼마전 설 연휴에 고향인 경북 김천에 홀로 내려갔다. 지난해 6월 아내와 아이들이 캐나다로 떠나 ‘기러기 아빠’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설 전날 김 팀장은 어머니와 함께 전을 부치고 만두를 빚기도 했다.

“명절이 되면 더 쓸쓸하죠. 손자와 며느리 없이 명절을 보내야 하는 부모님을 뵙기도 민망했고요.”

지금은 혼자 사는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우울증 초기 증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는 거예요. 늘 집에 들어가면 따뜻한 밥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혼자인 것을 깨달으면 가슴이 뛰고 눈물이 핑 돌았죠.”

☞직장인 24시 연재기사 보기

한 제약회사 마케팅팀의 박모 실장(44)은 이번 설 연휴에 미국을 다녀왔다. 벌써 2년째 아내와 아이들이 미국에 유학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1년 정도는 견딜 만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이것저것 집어치우고 가족과 합류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실제로 현대그룹에서 10년 이상 일해왔던 안모 부장은 가족과 1년 정도 떨어져 살다가 최근 캐나다로 합류했다.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해지려는 노력도 눈물겹다. KTB 김 팀장은 휴일이면 직원들과 ‘조조(早朝)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는 조만간 컴퓨터(PC) 카메라를 마련해 화상채팅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제약회사 박 실장은 독서로 빈 시간을 메운다. “예전에는 선물을 받을 때 다른 것들이 좋았는데 요새는 도서상품권을 받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교과서를 빼고는 평생 읽었던 책보다 최근 1, 2년 동안 본 책이 더 많을 거예요.”

대부분 기러기 아빠들은 주말이면 할인점에서 김밥을 사들고 등산이나 낚시를 가거나 아예 회사일을 휴일까지 연장한다.

기업체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이제는 ‘상처뿐인 영광’이라도 직장에서 중추 역할을 하면서,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임원이 되기를 바라고 사는 부장들이 왜 가족들을 떠나보내는 것일까. 초등학생 또는 중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기업체 부장들은 “자녀들을 아버지처럼 살게 하기 싫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기업에서 생활하다 지금은 사업체를 차린 강모씨는 ‘아이들 영어교육을 위해’ 두 자녀를 엄마와 함께 뉴질랜드로 보냈다. 강씨는 아이들을 입시교육에 찌들게 하고 싶지 않기도 했거니와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앞으로 삶의 ‘필수조건’이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 ‘기러기 아빠’는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앞으로 나와는 다른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