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삶에 답이 있을까 '어른되기의 어려움'

  • 입력 2002년 2월 15일 17시 13분


◇ 어른되기의 어려움/이수태 지음/228면 8천800원 생각의 나무

이수태씨는 올해 만 쉰 하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때 서울로 올라와 서울사대부고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한때 시와 소설을 사랑했던 문학청년이긴 했지만 졸업 후에는 자신의 전공과는 별 상관없는 첫 직장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들어가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그는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아버지다. 아들놈에게 옛날 습작원고 뭉치를 건넸다가 딱지를 맞고 아이가 즐겨 듣는 ‘죽여! 부셔!’ 하는 전자음악에 몸소리를 친다. 내 자식이지만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힘겹게 받아 들여야 하는 보통 아버지다.

그는 꿈보다는 현실이 무거운 중년이다. 20여년전 낡은 수필집을 다시 꺼내 읽으며 옛날처럼 감동이 일지 않는다고 한탄하면서도 이 경제개발이 남긴 씻을 수 없는 독소, 오늘의 인간들을 이욕(利慾)의 제물로 꼼짝없이 포박해 놓은 처참한 세태를 보며 그 상대적 원시시대였던 50년대의 정신적 풍경에서 잠시 쉬어 보고 싶어 하는 지친 중년이다. 게다가 그는 아직까지 휴대전화를 거부하는 생짜 아날로그인이다.

그러나 그에겐 아직도 세상에 대한 꿈이 있다. 좀 거창하고 추상적으로 들릴 지 모르지만 ‘근본이 고려되는 세상, 인간에 대한 존중과 특화(特化)가 살아 있는 세상, 자본의 질서에 모든 것이 다 휩쓸리지 않는 세상’이 그가 꿈꾸는 세상이다. 평범한 중년의 생활인 이씨가 낸 수필집 ‘어른되기의 어려움’은 그 꿈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청춘과 소유를 찬미하는 목소리가 드센 이 시대에 새삼 ‘진정한 어른되기’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어른은 시간이 지난다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는 과정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큰 것, 강한 것, 힘센 것, 자극적인 것이 세상의 중심에서 위압하는 이 시대에 작은 것, 약한 것, 소박한 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뿌리라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의 말에는 탈속이 아닌 속세의 진탕에서 지혜와 진리를 이야기하는 구도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우리는 그의 책에서 마치 진흙속의 연꽃처럼 가난한 영혼의 행복을 찾아 성찰과 마음의 다스림을 실천하는 한 사람의 성숙한 어른을 만난다.

부자되기를 강요하는 이 시대에 그는 도무지 ‘갖는다는 것’이 부끄럽고 낯설다. 오십줄이 넘어서 서울의 아파트에 입성하지만 젖빛 블라인드, 장미전구, 도어폰, 운동장같은 거실… 모든 것이 익숙치 않다. 10년이상 키워 온 못 생긴 소철나무 모가지를 부엌 가위로 자르면서, 18년 동안 써 온 장롱을 버리면서 서른 두평 아파트로 표현되는 애처로운 삶의 지표들을 행여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베란다에서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차라리 신음에 가깝다.

‘생각하면 이 평온한 일상은 파괴와 살육 착취의 나날들이 아닐까.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다. 세련됨도 세련됨이 아니다. 우리는 거대한 ‘…한 척(pretend)’속에 살고 있다. 너무 오래 …척 하느라 …척 한다는 사실마저 잊을 지경이 되었다.’

그가 던지는 삶의 철학은 경험과 사유로 세상을 살아 온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지혜로 가득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양보는 바보 짓 같고 모든 사람들이 공인하는 삶의 질서로부터 홀로 이탈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은 하나의 일탈이다. 그것은 단 한발자국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균적 가치관에 저항하며 구축된 다소 고독한 가치관이 필요하다. 내면에서 일탈이 주는 위협과 싸우고 때로는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 소외와 싸워야 한다.’(‘작은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 중에서)

사람이 성숙한다는 것은 품고 있던 생각을 더 절실하게 새기고 그렇게 익은 생각으로 자신의 삶과 존재를 성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를 걷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만난 윤 하사로부터 듣는 이야기도 신선하다.

‘얼마 후 나는 윤 하사와 둘이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그렇게 소대원들을 훌륭하게 장악할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애들은 칭찬해줄만한 일에 칭찬해주고 화낼만한 일에 화를 내면 절대 무서워하지 않는다,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화를 내고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칭찬을 해야한다. 한마디로 미친 척해야 비로소 무서워 한다. 내밀한 비법이나 전수한다는 듯 씩 웃던 윤 하사의 웃음은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알 수 없는 전율을 일으켰다. 제대를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종종 윤 하사가 했던 그 말을 떠올리며 좁은 목적의식에서 선택하는 전략적 사고의 위험성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곤 했다.’

신성(神聖)을 잃어버린 이 세속사회에서 그의 사유는 달리기, 헬리혜성, 시낭송회, 정리정돈, 사랑, 헌책, 돈쓰기, 건강 등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풀어 헤쳐진다. 이중 건강에 대한 그의 갈파는 가장 반 자본주의적(?)이다.

‘흔히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건강을 얻는다고 모든 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말은 건강의 상실을 전제로 할 때에는 의미있는 말이지만 건강을 전제로 할 때는 무의미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 ‘건강이 제일’이라는 말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는 것은 이 사회가 건강위에서 추구해야 할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며 삶의 역동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어른이 된다고 해서 삶에 어떤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늙어 간다는 것은 혹은 성숙해진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각했던 것을 얼마나 더 절실하고 강도높게 생각하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삶과 존재를 바꾸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모든 진정한 인식은 재인식이다’라는 그의 말이 오래 남는 이유다.

부유(浮遊)하는 정신의 가난함이 빚어낸 유치한 사회, 반성과 참회라는 코드는 아예 유전자에 없는 듯 사유를 거부하는 어른들이 많은 사회,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한국 땅에는 순수한 영혼을 향한 지향을 일상에 잊지 않고 사는 많은 이수태씨들이 있기에 아직 살만하지 않은가.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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